피해 건수 12만 7483건에 피해액 4조 2273억 835만 308원. 숫자로 본 태안 유류피해의 아픔이다.

“물건 같은 생명이 있는가 하면 생명 같은 물건이 있다”는 말처럼, 누군가에게 볼품없는 물건에 지나지 않은 태안 앞바다가 피해민에게는 생명과 같은 존재였다.

조만간 대전법원 서산지원은 이 생명의 가치를 두고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된다.

‘유류오염손해배상보장법’에 따라 대전법원 서산지원이 진행하는 사정재판은 피해민이 신청한 피해내용과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이 인정한 피해사정 규모를 검토해 적법한 수준의 피해보상 규모를 결정하는 절차다.

피해민들도 5년이라는 세월의 인고(忍苦)를 거쳐 사정재판의 막바지까지 겨우 다다랐다. 생존을 위한 정당한 대가만이 그간의 눈물과 고통을 씻어 낼 유일한 방안이라는 게 이들 마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건을 일단락할 최종 사정재판이 코앞인 만큼, 피해민들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그러나 사정재판 결과가 피해민의 눈물을 훔쳐줄 것이란 기대는 크지 않다. 피해민이 서산지원에 신청한 피해내용과 국제유류보상기금이 인정한 피해사정과의 간극이 너무나 큰 탓이다.

사정재판에 앞서 피해민이 서산지원에 신청한 피해내용은 12만 7483건에 피해액은 4조 2273억 원이다. 하지만 유류보상기금이 인정한 피해내용은 4800여 건 1800억여 원에 머문다.

피해민 측이 무면허·무허가, 맨손어업인 등 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운 보상 등을 피해내용에 포함했지만, 유류보상기금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양측의 입장을 합리적으로 조율하는 게 사정재판이라면 어찌 됐든 피해민이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기는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의 진단이다.

정종관 충남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물증이 없으니 사정재판 결과 피해금액이 얼마가 될지 모르겠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피해민 또한 5년이나 버텼는데 이 정도 보상받으려 고생했는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우려감을 내비쳤다.

피해보상 이 외에도 사정재판 결과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향후 피해민을 위한 삼성 출연금 증액과 정부의 지역경제활성화 사업 추진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정재판 결과가 터무니 없게 나오면, 어느 한 쪽이 항소를 제기할 수 있어 보상지원이 또 다시 연기돼 피해민의 고통만 늘어나게 된다.

정 연구위원은 또 “앞으로 핵심 논점은 사정재판 결과와 이에 따른 지역경제활성화, 지역발전기금 출연문제로 정리할 수 있다”며 “만일 사정재판 결과가 예상보다 크게 밑돌면 이후 정부의 경제활성화 사업과 삼성 출연금을 증액을 적극 이끌어내는데 명분이 약화될 수 있다. 사정재판 결과에 앞서 심도 있는 논의가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충남도에 따르면 서산지원은 빠르면 올해 내로 국제기금으로부터 사정 결과를 넘겨받고 보상지원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박재현 기자 gaemi@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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