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송화댁’의 정원. 나무들이 자연스럽게 숲을 이루고 마당 한가운데로 실개천이 굽이굽이 흘러가 더욱 운치가 있다. ‘송화댁’ 정원은 외암민속마을의 3대 정원에도 꼽히는 곳이다. |
|
|
우리 선조들은 예부터 자연을 거스르기보다 함께 조화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도 산의 형세와 물의 흐름에 어우러지려 했는데, 그렇게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마을이 됐다. 어느덧 밀려든 도시화의 물결 속에 옛 마을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거나 모양이 변했지만, 충남 아산의 외암민속마을은 아직도 자연과 어우러진 삶이 남아 있는 곳이다.
다른 전국의 민속마을들이 관람객을 위한 전시공간이라면 외암민속마을은 현재도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 공간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더욱 생동감 있는 전통 마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을 전체가 거대한 민속박물관인셈이다.중요민속자료 제234호인 외암민속마을은 조선 초 강씨와 목씨 등이 정착해 마을을 이뤘고, 선조 때 예안 이씨들이 모여 살면서 집성촌이 됐다. 외암이란 마을 이름은 영조 때 성리학의 대가 외암 이간 선생의 호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외암민속마을의 한옥에는 저마다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송화댁’, ‘참판댁’, ‘교수댁’, ‘군수댁’, ‘종손댁’ 등 집 주인의 관직이나 지위를 따온 것이라고 한다. 이 중 유명한 건재고택과 더불어 송화댁과 교수댁의 정원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지혜, 마당 속 작은 숲
가을과 겨울이 서로 자리를 바꿀 즈음 찾아간 외암민속마을. 매표소를 지나 마을 입구에 이르니 한옥과 초가집이 어우러져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온듯 하다.
돌담 골목길에 접어드니 조용한 마을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가끔 무리를 지어 이곳을 구경 온 사람들이 지나갈 때 말고는 마치 마을에 혼자 있는 듯 고요함을 느낄 수 있다.
돌담길을 따라 길을 걷는 데 대문이 빼꼼이 열린 기와집이 보인다.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담장 안에는 산 보다 더 자연스러운 작은 자연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안내지도를 찾아보니 ‘송화댁’이라고 한다. 송화댁은 송화군수를 지낸 이장현(1779~1841)의 호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기를 내어 조용히 집 안으로 발을 디뎠다. 외암민속마을 주택 중 일부는 주인의 동의를 얻어 관람객들에게 개방되는데, 엄연히 한 가정의 생활 공간인만큼 누가 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넓지도 않은 정원에 노송과 과실수 등이 어우러져 작은 숲을 이루고, 나무 사이사이로 석조물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마당 한 가운데로 지나가는 실개천이다. 주인은 마을 뒤 설화산에서 내려오는 냇물 줄기가 집 마당을 지나가는 것을 막지 않고, 또 물줄기를 일부러 돌리지도 않았다. 실개천이 마당 한복판을 구불구불 흐르도록 해 자연 속에 있는 즐거움을 집 안에서도 느끼고자 했나보다.
집 안에서 사람 소리가 들리니 한 걸음 한 걸음 더욱 조심히 걷게 된다. 사진 찍는 소리도 집 주인에게 방해가 될까봐 조용히 빠져나왔다.
|
|
|
▲ 겨울나기를 준비 중인 외암민속마을의 고목 |
◆집에도 이름이 있다
처음 걷는 마을길이라 특별히 어딜 가겠다는 계획도 없이 이어진 돌담을 따라 걷는데, 제법 넓은 공터가 나온다. 공터 앞 집에서 흥겨운 사람소리가 나길래 가까이 가보니 ‘교수댁’이라고 적혀 있다.
교수댁은 집 주인 이용구(1854~?)가 성균관 교수를 지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는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 별채 등 전통 한옥 구조를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다 사라지고 안채와 행랑채, 사당만 남아있다. 그리고 옛 사랑채 자리에는 새로 건물을 들여 전통마을체험 민박으로 활용하고 있다. 활짝 열린 대문으로 들어가 둘러봐도 될지 청하니 주인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 주신다. 안채 옆 마당에는 소나무 사이로 텃밭이 꾸려져 고풍스러움 속의 소박함이 전해진다. 마당을 둘러보는데, 외국인 3명 일행이 서투른 한국말로 들어와 인사를 하고는 다시 영어로 둘러봐도 좋을지 주인 아주머니께 여쭌다. 외국인들은 고개를 돌릴 때마다 ‘뷰티풀’이라고 조용히 외친다.
◆건재고택에서 본 또 다른 삶
교수댁을 나와 외암민속마을을 대표한다는 한옥 ‘건재고택’을 찾아갔다.
건재고택은 집 주인 이상익(1848~1897)의 영암군수를 지낸 것에서 ‘영암댁’ 또는 ‘영암군수댁’으로도 불린다. 이곳은 또 마을 이름의 기원이 된 외암 이간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건재고택의 대문은 굳게 닫혀있다. 한옥의 정원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건재고택을 못본 것이 아쉬워 문 앞에서 어슬렁거리다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기이한 소나무들이 마음을 더욱 안따깝게 만든다.
마침 주인인듯 한 아주머니가 마당에 빨래를 널러 나오기에 간청했지만 무위에 그쳤다. 못들어가는 마음때문인가, 담장 너머로 본 꾸밈없는 듯 제멋대로 자라는 듯 하면서도 나름의 질서를 갖고 있는 정원수들이 신비감마저 준다.
그런데 담장 옆을 보니 마굿간이 붙어 있는 작은 방 한칸의 초가집이 있다. 바람막이 담장도 없이 겨우 두 명이나 누울까싶은 작은 방, 이곳에서 말이나 소와 나란히 살았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 곳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추운 겨울과 잠자리의 경계는 오로지 얇은 창호지 한 장 뿐이었을 것이니.
◆사람에게서 나오는 외암민속마을의 가치
다시 돌담길을 따라 가는데 초가지붕위에서 마을 어르신들이 겨울을 앞두고 새 지붕을 입히고 있다. 지금이야 관람객들을 위한 볼거리지만, 예전에는 한 겨울을 나기 위한 삶의 일이었다. 마당에서는 한 노인이 지붕에 올린 볏짚을 능숙한 손놀림으로 엮고 있다.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더니 예전에 TV 프로그램에도 여러번 나왔다고 소박한 자랑을 하며 사진 찍기 좋은 장면을 만들어 주신다.
외암민속마을의 자산은 남아 있는 가옥 뿐만 아니라 이렇든 옛 삶을 알고 있는 ‘사람’도 중요하다는 것을 세삼 깨닫는다. 실제 외암민속마을이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다양한 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이다.
외암민속마을에서는 떡메치기, 전통 혼례, 다듬이 등의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짚과 관련해서는 짚풀문화제가 유명한데, 예는 엣 선조들처럼 사랑방에 앉에 짚신과 이엉엮기를 하며 담소를 나누는 재미가 남다르다고 한다. 또 음력 1월 14일 정원대보름 저녁에는 달집태우기를 하는 장승제도 널리 알려져있다.
단풍이 지는 겨울의 입구에서 자연과 삶이 어우러지는 외암민속마을을 추천한다.
글·사진=이재형 기자 1800916@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