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유류피해 사고가 결국 현 정부에서 해결되지 않은 채 차기 정부의 몫으로 넘어가게 됐다.
태안 유류피해 사건이 ‘차기 대통령을 향한 어젠다’의 여섯 번 째 주제로 선정된 것은 현 정부의 무관심 속에 5년여간 방치된 국민의 고통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서글픈 현실이다.
▶ 관련기사 3·4·11면
태안 유류피해 사건 발생 후 5년이 다 되도록 삶의 터전을 상실한 지역민의 생활은 궁핍해졌다. 기름때로 오염된 해안 일대는 제모습을 찾아가고 있지만, 생태계가 회복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정작 사고를 일으킨 국내 최고의 기업인 삼성은 뒷짐지고 사태를 방관하고 있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로 주민의 피해는 무려 2조 7000억 원(충남도 집계)에 이르지만 유류오염손해배상 보장법에 따라 법적 책임은 56억 원밖에 없다는 게 삼성의 주장이다.
정치권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이건희 회장을 증인으로 불러낸다며 뒤늦은 열의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회장이 출석할 것에 대한 기대는 높지 않다. 정부도 오는 12월 사정재판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것을 이유로 그동안 피해주민 지원에 지지부진했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삼성의 외면과 정부·국회의 무관심 속에 지난 5년간 지역 어민 4명이 삶을 마감했고, 최근에는 국응복 서해안유류피해총연합회장이 자해를 하는 등 고난의 시간은 끝나지 않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삼성·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사고를 대기업이 저지른 단순한 실수로 취급하는 동안, 피해지역 개개인의 삶에는 좌절만 각인됐다.
이와 관련 시민사회 일각에는 “돈과 권력이 법과 제도보다 우선하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태안 유류피해 사건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전문가들은 삼성·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 유출사고를 반면교사 삼아 차기 정부에서는 환경 재앙에 대한 법과 제도적 정비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대선을 앞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도 지역경제 활성화와 삼성 측의 약속 이행 등을 언급하며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그러나 법·제도를 정비하고 유류 피해에 대한 삼성의 도의적 책임을 묻는 것에서 한 발 더 나가야 우리 사회의 재벌이 상징하는 ‘시장 독점’ 문제로까지 사고를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는 근원적인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재벌이 법과 정치·경제·사회 전 영역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한 대기업은 어떤 말썽을 일으켜도 건재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분위기가 변하지 않는 한 제2의 유류 사태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정부는 대기업과 사회공동체와의 근본적 관계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며 차기 정부의 역할론을 주목했다.
박재현 기자 gaemi@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