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가 갈수록 심화되는 가운데 시중에 풀리고 있는 각종 정책자금마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시중 자금의 순환을 위해 한국은행은 수 차례의 파격적인 기준금리 인하로 대출금리의 인하를 유도하고 있지만 정작 은행들은 대출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는 상태다. 게다가 정부의 보증을 통한 긴급자금 수혈마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채 은행으로 재유입, 약발은 고사하고 경제를 더욱 야위게 만들고 있다.▶관련기사 3면

정부가 지난해 9월부터 시중에 공급한 자금은 중소기업 지원자금 17조 원 등 모두 22조 원. 이 가운데 상당수의 자금은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 지역 신용보증재단 등 보증지원을 통해 시중에 공급되고 있다.

최근 정부는 원활한 공급을 위해 100%에 가까운 보증률에 조건과 절차를 대폭 완화시켰고, 각 보증기관은 이를 받으려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22일 신용보증기금 충청사업본부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주 말까지 보증 공급실적은 1386억 원(652건)으로 전년 동기(244억 원) 대비 5배 이상 폭증했다.

기술보증기금 충청본부 역시 지난달에만 245억 원을 공급하며 전년 동기 대비 3배 이상 늘었다.

규모가 적은 소상공인들의 지원 요구는 더욱 빗발쳤다.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을 주 대상으로 하는 대전신용보증재단의 올해 보증실적은 지난 19일까지 한 달 보름 동안 무려 2427건(112억 9700만 원)에 달한다.

신용보증기금 관계자는 “보증조건이 완화되면서 중소기업들의 신청이 업무량을 훨씬 초과하며 밀려들고 있다”며 “이 상태로 가면 올 상반기 충청지역 공급 예상액 4600억 원은 조기 소진이 확실시 돼 추가 공급을 요청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이 같은 사상 최대 규모의 유동성 공급에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별반 나아지지 않고 있다. 조건이 다소 완화됐다고는 해도 여전히 정부 보증을 받기 어려운 여건에 놓인 기업들이 적지 않은 데다, 어렵게 보증을 받고도 자금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엉뚱한 곳에서 소모되기 때문이다.

특히 중소기업들과 보증기관들은 경기를 순환시켜야 할 지원자금 가운데 상당수가 공급되는 족족 은행권으로 흘러들어가면서 허수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100% 보증대출은 위험가중자산으로 편입되지 않는 점을 이용한 일부 은행들이 기업들에게 기존 채무를 정부 보증대출을 통해 변제토록 유도하기도 한다는 것.

일각에서는 은행들이 기업에게 ‘기관보증서를 가져와 원금을 상환하라’고 노골적으로 압력을 넣고 있다는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렇게 은행으로 흘러들어간 유동성 지원 자금은 정작 경기 부양과는 동떨어진 단기 금융시장으로 유입돼 은행들의 ‘돈놀이’로 활용되고 있다.

실제 지난달 초단기 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로 20조 원 이상 유입되며 전체 운영 규모는 사상 최고치인 111조 7000억 원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과 유관기관 등은 지원 자금이 편법으로 은행이 흡수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감독을 강화하고 있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다.

모 보증기관 관계자는 “은행들이 기업들에게 정부 보증대출을 해준 뒤 며칠 틈을 두고 다른 대출을 상환하는 방식으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있다”며 “경기회복을 위해 최전선에서 움직여야 하는 은행들이 오히려 이를 가로막고 있는 상태”라고 우려했다.

이재형 기자 1800916@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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