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 서구에 사는 A 씨는 지난 21일 오전 집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 남성이 딸의 이름 등을 말하면서 “딸을 납치했으니 불러주는 계좌로 1000만 원을 보내야 풀어주겠다”는 내용의 전화였다. 주변에서는 여자의 울음소리까지 들렸다. A 씨는 전화를 끊고 곧바로 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때마침 통화가 되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A 씨는 이 남성이 불러준 계좌로 돈 일부를 보냈고, 나중에 딸과 통화가 되고 나서야 보이스피싱이란 것을 알게 됐다.

이처럼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은 단순 사기가 아니라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무서운 범죄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게다가 자식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에 전화 한 통화로 수백만~수천만 원의 돈을 날리는 것도 한순간이다. 수법도 점차 진화해 지금도 중국 등의 콜센터에서는 하루에도 수백~수천 통의 전화를 한국으로 건다. 경찰 등이 보이스피싱 범죄를 막기 위해 ‘전담팀’ 등을 만들어 운영하는 등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정작 수사에는 한계를 보이는 것도 현실이다.

◆보이스피싱, 외국인 수사권 제한…잡아도 ‘몸통’ 아닌 ‘꼬리’뿐

경찰 등에 따르면 2006년 중반, 보이스피싱이 국내에 상륙한 후 피해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지난해만 전국적으로 1019억 원, 대전에서만 40억 원이 넘는 피해가 발생했다. 경찰은 한 해에도 수많은 보이스피싱 조직을 적발하고 있다. 하지만 잡아들이는 수준은 인출책 같은 꼬리일 뿐, 정착 배후세력에 해당하는 몸통 검거는 사실상 전무하다.

실제 최근 지역에서 경찰에 검거된 사례만 봐도 중국 현지 보이스피싱 조직의 지시를 받고 국내에 입국해 입금된 돈을 인출하는 인출책이 대부분이다.

실질적인 배후에 해당하는 몸통을 붙잡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중국 등의 국적을 가진 외국인이기 때문이다.

중국 등지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다 보니 이들에 대한 수사권은 당연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중국 현지의 공안 등에 이들의 검거를 요청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중국 현지에서는 심각한 범죄로 구분되는 한국과 달리 ‘돈 되는 사업’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즉 조직은 기업, 보이스피싱 범죄는 직업, 국경은 보호망이자 안전망이 되는 셈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인출책 등이 붙잡혔을 때는 철저히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점도 몸통을 붙잡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다.

이들은 경찰에 검거된 뒤 주로 “보이스피싱 조직인 줄 모르고 그저 돈을 준다길래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레퍼토리를 쓴다는 설명이다. 실질적 배후세력인 몸통의 검거를 막고 형량을 줄여보자는 속셈에 기인한다.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 어떻길래…

대부분의 보이스피싱 조직의 본부는 중국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목인 총책은 안전한 곳에서 국내 조직원들에게 스마트폰이나 이메일 등으로 명령을 하달한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중국 내 보이스피싱 조직은 처음 보이스피싱이 활개를 칠 때만 해도 수십 개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끊임없이 세포 분열을 했고 수백 개의 점조직으로 나뉘었다.

국정원 등에 따르면 중국에는 2008년 기준 10개 정도의 조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보이스피싱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이유다.

이들 조직의 심장은 전화를 걸거나 시나리오 등을 짜는 콜센터다.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하기 위해 콜센터를 여러 곳으로 분산시키는 것은 물론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3개월~6개월 단위로 옮겨 다닌다.

콜센터는 주로 직접 통화를 하는 팀과 자동으로 전화를 거는 통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팀,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팀, 시나리오를 만드는 팀 등으로 구성된다.

국내 총책은 중국에 있는 총책의 지시를 받아 조직을 만들고 운영된다. 한국 조직은 통장 모집팀과 배달팀, 현금 인출팀, 송금팀으로 운영되는 것이 보통이다. 중국 조직과 다른 것은 철저하게 점조직 형태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이들은 주로 별도의 사무실을 두지 않고 선불폰이나 대포폰 등을 이용해 연락을 주고받는다. 검거가 어려운 이유다.

조직원들은 여러 루트를 통해 모집한다. 국내에 체류 중인 중국인 유학생이나 불법 체류 중국인 등을 포섭하거나 대만인들이 관광객으로 위장해 들어온 후 조직원으로 활동한 사례도 있다.

때문에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보이스피싱을 더이상 경찰에게만 맡겨놓는 것은 한계가 있는 만큼, 국가차원에서 전담수사처를 신설하는 등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고형석 기자 kohs@cctoday.co.kr

Posted by 충투 기자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