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피서지’로 각광받던 공공기관이나 은행 객장, 호텔 로비 등에 요즘 피서객(?)들의 발길이 뜸하다.

정부의 에너지사용 제한 조치에 따라 냉방온도 제한이 이뤄지는 이곳은 도시민의 피서지라는 옛 명성을 잃고 있다.

대신 냉방온도를 탄력적으로 운영하거나 규제를 받지 않는 서점, 도서관, 영화관 등이 새로운 피서지로 뜨고 있다.

대전의 낮 최고기온이 34도까지 치솟은 31일 오후 1시 지역의 한 시중은행 객장은 실내온도가 28도로 시원한 바람이 나와야 할 에어콘에서는 미지근한 바람이 나오고 있었다.

덕분에 이곳을 찾은 고객들은 부채질과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무더위에 쉴 곳이 없다”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 은행을 찾은 한모(45·서구 둔산동) 씨는 “예전에는 집에 있다가 은행에 일을 보러오면 시원해서 시간가는 줄 몰랐는데 최근에는 빨리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고객들 사이에선 ‘더위 피하러 은행 간다’는 말이 옛말이 돼 버렸다는 푸념도 나온다.

최근 긴팔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갖춘 깔끔한 은행원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은행 각 영업점의 직원들은 통상 정장 차림을 하고 근무해왔지만 최근에는 반소매 셔츠나 티셔츠 등 시원한 복장을 착용한 채 업무를 보고 있다.

이는 몇년 전부터 은행들이 정부의 에너지 절약 캠페인에 동참하면서 객장과 사무실 온도를 예년에 비해 높히고 시원한 복장차림으로 근무할 것을 권고 했기 때문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예년같으면 객장이 사랑방인양 부산했는데 요즘엔 고객들이 대부분 일만보고 바로 나가거나 에어컨 온도좀 낮춰라 등 직원들에게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고 말했다.

인근 관공서에서 만난 시민 김모(49) 씨는 “안과 밖의 온도차가 별반 느껴지지 않는다”며 “요즘 식구들과 주말엔 도서관이나 서점을 찾아 더위를 피한다”고 말했다.

늦은 밤에도 수은주가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가 계속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한 시민들은 가까운 공원이나 심야 영화관 등 야외로 몰리고 있다.

늦은 밤 유등천과 갑천 등 야외로 나온 시민들은 천변을 산책하거나 다리 밑에 텐트를 쳐놓고 잠시나마 무더위를 식히고 있다.

또 영화관은 방학을 맞아 더위를 피해 온 관람객들로 빈자리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호황을 맞고 있다.

한편 정부는 전력부족 사태에 대비해 지난 5월부터 백화점과 호텔, 대형 마트, 은행 등 다중이용시설의 냉방온도를 26도로 제한하고 있다.

이호창 기자 hclee@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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