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응노 ‘군상’. 대전시립미술관 제공  
 

고암 이응노(1904-1989)의 삶과 예술은 20세기 한국 그 자체이다. 그는 식민지와 해방공간, 분단과 전쟁, 이주와 이념, 산업화와 민주화 등 한국 근현대를 관통하는 역사적 사건들을 온몸으로 받아 안았다. 그는 충남 홍성에서 나고 자랐으며 19세 때 서울로 가서 해강 김규진의 문하로 들어갔는데, 특히 대나무 그림에 능통하여 죽사(竹士)라는 호를 얻었다.

1924년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청죽’으로 입선한 것을 시작으로 활동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가와바타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남화의 대가 마츠바야시 게이게츠를 사사했다. 1945년 귀국한 그는 단구미술원을 설립하여 후진양성에 힘썼으며, 1948년 홍익대 동양화과 주임교수가 되었다.

그는 전통회화와 현대미술을 접목하는 수묵추상으로 혁신적인 미술운동을 주도했다. 환갑 나이에 유럽으로 건너가 파리에 정착한 그는 꼴라주 기법의 문자추상을 완성하며 유럽 미술계에서 자리를 잡았다. 1964년부터는 동양미술학교를 설립하여 유럽인 제자들을 길러냈으며, 상파울로비엔날레에서 명예대상을 획득(1965)하여 세계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그는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 월북한 아들을 만나고자 했던 그의 꿈은 이후 그가 남한에서의 활동을 금지당하는 족쇄가 되었다. 1989년 호암갤러리에서의 개인전을 앞두고 작고한 그는 음악의 윤이상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전세계에 널리 알려져있다.

그는 민주화 과정의 한국사회를 다룬 여러 작품들을 남겼다. 이 작품은 1980년대 초의 ‘군상’ 연작을 대표하는 작품으로써 선묘로 이루어진 인간의 형상을 화면 전체에 반복한 그림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간군상은 1980년대 한국의 사회변혁 에너지를 표상한다.

거대한 파도처럼 거리와 광장으로 모여들었던 1980년대 군중의 에너지가 역동적인 화면 속에 담겨있다.

김준기 <미술평론가·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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