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연탄을 보고 줄어가는 장수에 애를 태우던 고단했던 과거를 기억하기도 하고, 누구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며 지나간 사랑의 열정을 대입해 보기도 하고, 또 누구는 알싸한 연탄 향이 더해진 생선구이 한 점에 왈칵 목이 메기도 한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됐든 연탄이 반가운건 어디까지나 제 생명의 가치를 증명하는 순간의 이야기로, 그 활용유무를 떠나(특히나 지금처럼 난로가 필요 없어지는 계절이 됐을 때는) 상당한 부피의 연탄재는 자신의 치부라도 드러나는 양, 남들이 알아차리기 어려운 은밀한 곳에 있어 주기를 바라게 된다.
일찍이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무렵에야 날개를 펴기 시작 한다'는데, 너무 일찍 자신의 부엉이를 날게 한 우리의 미네르바는 결국 처참히 날개가 찢겨지는 고통을 당했다. 다 같이 날기 시작하는 황혼녘이 되기 전에 홀로 날갯짓을 시작한 영리한 부엉이에게 우리가 가한 형벌은, '언제나 모든 것이 행해지고 난 뒤에 오는 늦은 깨달음의 진리'를 몸소 보여주는 것이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굳이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내가 해치워 온 밥공기 수만큼 저절로 알아지는 진리가 있다. 비록 내 자신이 그 '형벌을 지움'에 가담하지는 않았다 손 치더라도, 스스로 이미 알고 있는 진리를 애써 외면했다면 우리 모두는 공범자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의 차가운 몸을 덥혀주고, 얇은 내 주머니의 사정을 이해해주고, 어머니의 그리운 손맛을 맛 볼 수 있게 해주었던 과거의 효용은 어느 새 잊어버린 채 오늘 그저 천덕꾸러기로만 치부되는 연탄재의 더미가, 순간의 이로움만 취한 채 쉬이 버려 버리는 내 자신의 과오의 더미는 아닐는지 생각해 본다.
신현종 사진부 차장 shj0000@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