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균의 ‘86학번 김대리’. 대전시립미술관 제공  
 
‘조명빨’ 받으면서 마이크 잡고 노래를 부르는 직장인, 모니터 속의 노래 가사와 배경 화면으로 등장한 야한 포즈의 여성, 무채색으로 어둡게 처리한 그림의 배경으로 간명한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그림이다. 여기에 세상 속에서 이제 막 자기 자리를 잡아 ‘대리’라는 딱지를 붙인 직장인의 정체성을 함축하고 있는 ‘86학번 김대리’라는 감각적인 제목을 붙였다.

박영균(1966~)의 명작 ‘86학번 김대리’는 시대와의 불화를 겪고 있는 서른 초반 청년의 모습을 한 폭의 화면 안에 신랄하게 담아내고 있다. 대한민국 남녀노소의 놀이문화를 노래방이 완전정복한지 그리 오래지 않은 1997년 여름 장마철. 비 오는 어느 날 박영균은 조각가 친구를 만나 노래방에 갔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기타 하나 있으면 어디서든 둘러앉아 노래를 불렀지만 노래방 문화가 급속히 번지면서 닭장처럼 닫힌 공간에서 기계음에 맞춰 마이크를 잡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아직 익숙하지는 않은 노래방에서 안치환의 노래 ‘솔아 푸르른 솔아’를 처연하게 목 놓아 부르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박영균은 세대정체성과 시대와의 미묘한 갈등을 발견했다. 그것은 서른 무렵의 직장초년생들이 겪는 사회적 성장통이었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 한국현대사의 격동을 고스란히 삶으로 받아들였던 화가 박영균은 서른 무렵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풍경을 이 한 장의 그림 속에 담았다.

전형적인 386세대 화가인 박영균이 서른 초반에 접한 세상은 자신의 세대정체성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변화하는 세상의 모습을 일상의 장면을 통해서 절묘하게 담아낸 이 그림은 1990년대 이후의 한국현대미술이 일상담론을 대표한다.

지금은 부장이나 이사가 되어있을 이 땅의 수많은 ‘86학번 김대리’들. 요즘도 노래방에서 ‘솔아-’나 ‘광야에서’를 열창하고 있을까?

김준기 <미술평론가,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Posted by 충투 기자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