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형님과 함께 6·25전쟁에 함께 참전했던 막내 김문평(왼쪽 두번째) 씨가 25일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아 가족들과 함께 형님들의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허만진 기자 hmj1985@cctoday.co.kr  
 

“그리운 형님들 오랜만에 아우가 찾아 왔습니다.”

6·25전쟁에 나란히 참전했던 ‘용감한 삼형제’가 25일 국립대전현충원 사병 제3묘역에서 눈물로 재회했다.

이미 두 형제는 세상을 떠나 고인이 됐지만 생존해 있는 막내 동생인 김문평(83·대전 유성구) 씨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 삼형제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이들 삼형제의 사연은 둘째 형인 고 김제평 중사의 탈북자 며느리 박선숙(40·가명) 씨가 국립대전현충원에 근무하게 되면서 비로소 세상 밖으로 알려졌다.

북한 신의주 출신인 첫째 고 김윤평(육군중사), 둘째 고 김제평(육군중사), 막내 김문평 삼형제는 6·25전쟁에 참전해 큰 공을 세운 국가유공자다.

특히 고 김윤평 씨는 당시 직업군인으로 근무하고 있던 동생들과 달리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전쟁 발발과 동시에 부산 피난길에 올랐다가 국가를 위해 자진 입대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도 삼형제는 자신의 안위보다는 다른 형제의 안부를 염려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김문평 씨는 “전쟁이 시작되고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인근 부대에 작은 형님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출장 허락을 받고 달려가 작은형님을 뵙고 왔다”며 “두 형님도 내 소식을 알기 위해 간부에게 보내는 편지에 내 것도 동봉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들의 마음을 하늘도 감동한 것일까.

전쟁을 마치고 무사히 재회한 삼형제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공을 인정받아 첫째와 셋째는 화랑무공훈장을, 둘째는 충무무공훈장을 수훈했다.

이 중 둘째 고 김제평 씨는 통신병으로 근무하면서 강원도 진부령전투에서 연락이 끊겨 사단 전체가 전멸할 수 있는 위기에서 목숨을 내걸고 정보를 전달해 구출한 영웅으로 전해졌다.

고인이 된 두 형제의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은 2009년 12월 둘째 고 김제평 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이뤄졌다.

당시 큰 형인 고 김윤평 씨는 11년 전인 1998년 9월에 사망했지만, 동생과 함께 국립묘지에 안장되기 위해 충남 공주시 한 공동묘지에서 기다렸다가 나란히 안장됐다.

김문평 씨는 “나도 형님들과 같이 함께하고 싶지만, 현충원 직원에게 묘지 이장이 법으로 금지돼 가능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세상을 떠나 형님들과 나란히 하지 못하는 점이 매우 안타깝고 한쪽 마음이 쓸쓸하다”고 말했다.

한편, 국립대전현충원은 이날 6·25전쟁 62주년을 맞아 사병 제3묘역에서 삼형제 유가족 등이 참여한 가운데 묵념, 편지읽기 등 참배 행사를 마련했다.

양승민 기자 sm1004y@cctoday.co.kr

Posted by 충투 기자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