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국보 1호인 숭례문이 소실돼 우리 문화재 관리·보존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으나 대전지역 주요 유형문화재는 부실한 관리와 무관심으로 방치되고 있다.▶관련기사 3·21면

특히 건조물을 비롯 모든 문화재는 화재 등 유사시에 대비해 철저한 기록의 보존이 필요하지만 지자체의 예산부족 타령으로 아직까지 정확한 문화재 기록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실 등으로 심각하게 훼손됐을 경우 복원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지역 문화재 관리의 현주소다.

◆문화재 참혹사=15일 현재 대전시 지정문화재는 국가지정 문화재 5개, 시지정 문화재 98개 등 153개와 등록문화재 16개를 합해 모두 169개에 이른다. 이 중 불에 취약한 목재 문화재는 중구 9곳, 동구 9곳, 서구 3곳, 유성구 4곳, 대덕구 12곳 등 모두 37곳에 달한다.

특히 본보 취재팀이 대전지역 주요 유형문화재 10여 곳 관리실태를 직접 확인한 결과 대부분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됐거나 관리부실로 훼손 상태가 심각했다.

실제 동구 가양동 우암 사적공원 내 남간정사의 경우 ‘건물이 노후된 관계로 파손된 부분이 있어 견학하는 학생이나 방문객들이 위험을 느낄 수 있어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어 문화재 관리가 그동안 얼마나 허술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또 대덕구 송촌·중리동에 있는 동춘고택 및 쌍청당의 경우 화재 발생 시 필요한 소화기가 대부분 작동하지 않았다. 송애당은 문화재 보 지역이 아닌 쓰레기 처리장으로 변질됐다.

영조 때 호조판서를 지낸 유회당 권이진 선생의 종가(중구 무수동)는 시 유형문화재 제29호인 데도 흉가 그 자체이다. 건물 곳곳에 낙서와 시멘트로 덧댄 자국, 곳곳에 녹슨 자물쇠,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철판 등은 주요 문화재의 원형적 보존마저 사치로 여겨졌다.

   
▲ 국보 1호인 숭례문이 소실된 지 정확히 1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지역 내 주요 유형문화재는 부실한 관리와 시민들의 무관심으로 방치되는 등 몸살을 앓고 있다. 대전시 동구 가양동에 위치한 남간정사 앞에 건물이 노후된 관계로 문을 닫는다는 알림판이 세워져 있다. 김상용 기자 ksy21@cctoday.co.kr ☞동영상 cctoday.co.kr 허만진영상기자

◆지정만 하고, 관리는 네 몫=귀중한 문화유산이 자연적 풍화, 시민들의 무관심, 훼손 등으로 점차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관리주체인 대전시와 자치구들은 모두 손 놓고 있는 상태다.

현행 문화재 관리에 대한 법과 규칙, 시행령 등도 화재시설 설치를 강제하지 못하고 있어, 숭례문 사태처럼 묻지마 방화사건이 발생하면 '사후약방문'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문화재보호법에는 문화재 화재예방 및 진화를 위한 구체적인 시행기준을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지만 정작 시행령은 기준을 정하지 못하고 있어, 문화재에 소화시설과 경보시설 등을 설치하지 않더라도 문제삼을 수 없다는 모순이 상존하고 있다.

이처럼 미비한 법이나 제도로 인해 '원형보존' 논리가 앞서는 문화재는 오히려 일반 건물보다 방재관리가 취약한 경우가 많고, 화재 등 재해가 닥쳐도 적극적인 진화작업이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여기에 이들 목재 문화재는 대부분 시지정 문화재로 관리나 보존, 기록 등의 모든 책임이 자치단체에 있다는 점이다.

지정 문화재의 경우 설비 등 주요 예산의 70%를 시비에서 지원해주고, 나머지 30%는 자치구 예산으로 편성, 운영된다. 하지만 경상비(청소 등)는 시비와 구비가 각각 50%로 세수가 부족한 지자체는 문화재 관리비 부담조차 버거운 실정이다.

한 구청 관계자는 "구비는 매우 적어 대부분 국·시비로 문화재를 관리하고 있다”며 “올해의 경우 문화재 관리비로 3억 800여만 원을 책정했지만 향교관리사정비 5000만 원, 문화재관리인 인건비 1억 1500만 원, 목조문화재 방재시스템 구축비 5600만 원 등을 빼고 나면 실제로 문화재 관리예산은 거의 없다"고 하소연했다.

대전시소방본부 관계자도 “문화재의 경우 소유자나 관리인이 유지 및 관리의무가 있다. 소방본부는 소방시설에 대한 지도감독만 할 뿐 문화재 소유자를 상대로 단속업무를 펼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주요 문화재에서 일어나는 불법 침입이나 문화재 훼손 등의 범죄를 대하는 경찰의 태도도 여전히 소극적이다.

대전지방경찰청 생활안전계 관계자는 "문화재 침입을 막거나 범인 검거를 위한 CCTV는 자체 예산이 없어 설치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구대에 통보해 순찰활동을 강화하라는 지시를 하는 것 말고는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전시 관계자는 "지난해 숭례문 소실 사태 이후 문화재청과 공동으로 종합방재시스템을 구축, 올해부터 예산에 반영해 중점 추진할 방침"이라며 "화재 등 유사시에 대비한 문화재 정밀 실측조사는 아직 예산부족으로 계획이 없지만 향후 주요 문화재를 중심으로 시범사업을 고려하겠다"고 설명했다.

박진환·천수봉 기자 pow17@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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