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지역을 비롯한 전국에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12일 충남 홍성군 금마면 송암리에서 이한요(72)씨가 부인과 함께 가뭄탓에 타들어가는 고추를 살펴보고 있다. 홍성=허만진 기자 hmj1985@cctoday.co.kr  
 

"이렇게 가물기는 6·25 이후 처음이여. 저기 논 사이로 흐르던 개천이 마를 지경이니 원…."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던 12일 충남 홍성군 금마면 송암리에서 만난 농민들은 논밭에 들어가 일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진 논에는 이름 모를 잡초만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평년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고추를 맺은 고추나무는 생기를 잃은 채 휘청댔다.

바닥을 드러낸 관정 옆에선 물을 퍼 올리는 모터 펌프만 헛심을 쓸 뿐 정작 물이 제대로 공급되는 논은 거의 없었다. 농수로에는 속이 빈 농업용 호스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논두렁에서 하늘에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던 마을 주민은 갈라진 논바닥을 보곤 혀를 차며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3대째 이 마을에서 벼와 고추농사를 짓고 있다는 이한요(72) 씨는 "몇 달째 비가 안 와 논에 물을 대주는 관정도 바닥을 드러냈다"며 "논에 물이 들어와야 나가서 일을 하지, 뭐라도 해볼까 하고 논에 나가도 짜증만 난다"고 푸념했다.

이 씨는 이어 "이 동네는 소형 관정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가뭄이 더 심한 동네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 씨의 부인 김영순(70) 씨도 고추밭을 바라보며 거들었다.

김 씨는 "일단 모를 심고 뿌리가 내리면 조금 가물어도 괜찮은데, 뿌리가 내리기도 전에 물이 말라 손 쓸 도리가 없다"며 "가뭄도 천재지변인데 나라에서 도와줘야지, 10원 한 장 안 대줬다"며 원망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서 찾은 태안군 남면의 한 마늘밭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다섯 명의 농민이 잎이 누렇게 마른 마늘을 캐내고 있었다. 갓 캐낸 마늘은 푸석푸석해 보였으며 알맹이도 그리 굵지 않았다.

농민 이영숙(56) 씨는 "비가 하도 안 와서 마늘이 잎이고 꼭지고 다 말라버렸다"면서 "씨알도 작아 제값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한 한 농민은 “우리 논은 간척지라서 보통 논보다 물이 더 많아야 하는데 가뭄 때문에 피해가 훨씬 큰 상황”이라며 “논에 댈 물을 여기서 1㎞ 떨어진 서산 B방조제에서 끌어오고 있는데 그마저도 열흘을 버티기 어렵다”고 허탈해했다.

충남도는 시·군 별로 재해대책 예산을 긴급 배정하고, 농어촌공사의 착정장비를 활용해 관정을 개발하는 데 힘을 쏟아 붓고 있다. 하지만 극심한 가뭄 앞에 농심도 바짝 말라가고 있다.

도 농촌개발과에 따르면 11일 현재 올해 강수량은 197.1㎜로 지난해의 63% 수준이다. 지난 5월 홍성과 태안의 강우량은 각각 14.5㎜, 11.5㎜에 불과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99.5㎜, 44.5㎜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양이다. 도내 저수율도 44.2%로 전국 최저 수준이다.

이날 홍성·태안 가뭄 현장을 직접 둘러본 안희정 충남지사는 “주말에 비 소식이 있지만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예비비 등 모든 자원을 동원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도 차원에서 모든 장비를 동원해 가뭄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충남도는 이날 예정된 3농혁신 보고대회를 연기하고 안희정 지사를 비롯해 농업관련 공무원들은 도내 시·군 중 가뭄 피해가 극심한 홍성·태안지역을 찾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병욱 기자 shoda@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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