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선열들의 애국충정을 기리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우리 대전·충남지역의 독립유공자는 단재 신채호 선생을 비롯해 수십여 명에 달하지만, 지금껏 생존하고 있는 애국지사는 대전 5명, 충남 2명 등 모두 7명뿐이다.

조동빈(88) 옹, 이일남(87) 옹, 정낙진(87) 옹, 조일문(95) 옹, 정완진(85) 옹, 유제경(95) 옹, 이대성(93) 옹. 이들은 하나같이 젊은 나이에 학생운동을 벌이거나 광복군으로 활동하는 등 조국을 위해 젊음을 바친 대가로 일본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르거나 모진 고문을 받았던 분들이다.

우리는 매년 이맘 때가 되면 이들의 뜻을 되새기며 감사의 뜻을 전하지만, 이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어떤 활약을 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때문에 또 다시 나라를 잃는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들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본받아 시대를 살아가는 시금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충남 천안에 살고 있는 조동빈 옹은 평안남도 평양 출신이다. 그는 22살이 되던 1945년 도쿄에서 중학교를 다니다 강제징용을 거부하고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광복군에 입대했다. 광복군에서 그는 국내로 잠입해 주요 시설을 폭파하는 훈련을 받고 임시정부 선전과 재정자금 조달책으로 활동했다. 이 같은 공을 인정받아 1963년 대통령 표창,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충남 금산에 사는 이일남 옹은 지난 1942년 전주사범학교 재학 당시 일본인 교장의 노골적인 민족 차별교육에 분개해 비밀결사 단체인 ‘우리회’를 조직하고 항일활동을 전개했다. 1945년 만주에서 귀국해 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충남 금산사방관리소 인부로 취업했지만, 발각돼 일본 헌병대에 체포됐다. 그는 1986년 대통령 표창, 1990년 애족장을 훈격 받았다.

대전 중구에 살고 있는 정낙진 옹은 1941년 일본 동경철도학교에 재학하던 중 항일결사 우리조선독립그룹으로 활동하며 공주지역에서 항일운동을 펼쳤다. 일본의 건물과 식량창고에 불을 지르고 도로를 파괴하는 등 항일운동을 주도하다 이듬해 일본경찰에 붙들려 모진 고문을 받았다. 고문의 충격으로 그는 정신장애를 일으켜 동경시립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고초를 치렀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대전 유성구에 거주하는 정완진 옹은 경북 김천 출신으로 1943년 대구상업학교 재학 중 항일학생결사 ‘태극단’에 가입해 활동했다. 그는 이 단체에서 항일운동을 벌이다 동료의 밀고로 발각돼 일본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일본경찰에 모진 고문을 받다 기소유예로 출옥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같은 유성구에 사는 조일문 옹은 함경남도 영흥 출신으로 남경 중앙대학 재학 당시 한족동맹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해 일본군의 정보를 파악하는 등 독립운동을 펼쳤다. 1944년에는 일본군의 기밀문서를 대량으로 빼앗아 대일작전 수행에 이바지했고 광복군 제2지대 제3구대 강남분대에서 활동했다. 그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대전 중구에 거주하는 유제경 옹은 1941년 공주 장기국민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학생들에게 독립사상을 설파하다 옥고를 치렀다.

대전 서구에 사는 이대성 옹은 1940년 함경도 단천 치수축항사무소에 근무할 당시 동지와 함께 식민정책 반대운동을 하다 체포돼 징역 2년을 받고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고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고형석 기자 kohs@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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