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 김녕미로공원은 1995년 우리나라 최초로 개장한 미로공원이다. 도전자는 9번 선택의 기로에서 성공해야 목적지에 도달해 ‘성공의 종’을 칠 수 있다. 평소 도시에서 길을 헤매면 짜증이 날테지만, 이 곳은 반대로 즐겁다.  
 

“이 쪽으로 돌아가야 맞는 것 같아.”

“저 사람한테도 얘기해줄까?”

“아니야, 얘기해주지 말자. 킥킥.”

짙푸른 나무 벽으로 둘러쌓인 꼬불꼬불 오솔길에서 마주친 학생들이 소근거린다. 언뜻 들리는 소리는 ‘이 길’로 가면 안될 것 같지만, 왠지 그동안 헤매었던 시간에 대한 보상심리와 함께 이 길이 맞을 것 같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고개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면서도 발걸음은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게 만든다.

그렇게 걸어서 닿은 곳, 사방이 나무로 막힌 막다른 곳이다. 일순간 정적 속에서 향긋한 나무냄새를 맡으며 잠시 멍하게 주위를 한바퀴 둘러본다.

방법은 되돌아가는 것 뿐이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약간은 허탈한 기분으로 오솔길을 걷는데, 맞은 편에서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오고 있다. 문득 이 길로 가면 막혀 있다고 얘기해 주려다가, 아까 나와 마주친 그 학생들처럼 이내 입을 닫고 묵묵히 지나갔다. 저 연인도 미로를 즐기러 들어왔을 테니까.

   
 
◆길 찾기의 재미, 헤매는 재미

제주도 김녕미로공원은 1995년 우리나라 최초로 개장한 미로공원이다. 도전자는 김녕미로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9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 9번을 모두 성공해야 목적지에 도달해 ‘성공의 종’을 칠 수 있는데, 이를 실수 없이 맞추는 것은 확률적으로도 극히 드물다. 한 번 길을 잘 못 들기 시작하면 그 안에서 갈라진 다른 길과 마주치기 때문에 길을 찾는 것은 더욱 미궁에 빠진다. 평소 도시에서 길을 헤매면 짜증이 날테지만, 이 곳은 반대로 즐겁다. 김녕미로공원에는 재미난 미로 탐험과 함께 향기가 있기 때문이다. 미로에 들어서는 순간 알싸한 향기가 온 몸을 휘감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미로 전체에 나무 향기와 바닥의 향기가 어우러진다.

미로를 구성하고 있는 나무는 ‘랠란디’라는 종이다. 사계절 푸른 상록수인 랠란디에서 나오는 향기는 사람의 정신을 맑게 해주고 심리적 압박감을 완화시켜준다고 한다. 또 붉게 보이는 바닥은 ‘화산석이 송이’인데, 이는 오염된 공기를 정화시키고 혈액 순환을 촉진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미로에 들어선 도전자들은 미로에 들어서면 몸이 가뿐해지고 절로 웃음이 나오나 보다.

◆미로 심리학의 과학이 적용된 김녕미로공원

미하이 교수의 플로우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적당한 난이도와 기술이 조합되었을 때 더욱 몰입하고, 그에 따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이 이론은 김녕미로공원에도 적용됐다. 미로 규모가 너무 작거나 길을 찾기 쉬우면 금방 지루해 진다. 반대로 미로 규모가 너무 크거나 난이도가 어려우면 불안하고 지치게 된다.

김녕미로공원은 플로우 이론에 입각해 적당한 규모의 미로시설에서 방문객들이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최적화됐다. 또 미로찾기 재미가 반감되거나 오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여러가지 보조 구조물을 설치해 심리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실제 미로찾기에 지칠경우 미로공원 위를 지나는 구름다리에 올라 대략적인 위치를 가늠하고 재도전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얻을 수 있다.

   
▲ 김녕미로공원은 세계적인 미로 디자이너 애드린 피셔가 3년 간의 노력끝에 만들어 낸 구조이다.
◆세계적 미로 전문 디자이너 작품

김녕미로공원은 세계적인 미로 디자이너 애드린 피셔가 3년 간의 노력 끝에 제주 역사 기행을 담아 만들어낸 작품이다. 김녕미로공원의 구조는 제주도를 대표하는 7가지 상징물들로 이뤄졌다. 전체 미로의 형상은 제주도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해안선을 잘 나타낸다. 또 제주도 특산물 중 하나인 조랑말 문양과, 17세기 말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난파한 것을 형상화한 배 모양도 있다.

송곳니를 드러낸 뱀의 문양도 찾아 볼 수 있는데, 실제 제주도에서는 1970년대까지 뱀에 대한 샤머니즘 의식이 행해졌다고 한다. 이 밖에 우리나라 태극기를 상징하는 음양을 형상화한 문양도 있다.

그렇다면 김녕미로공원은 누가 구상했을까? 김녕미로공원은 제주대를 퇴직한 미국인 더스틴 교수가 1983년부터 손수 땅을 파고 흙을 나르며 나무를 가꿨다고 한다. 더스틴 교수는 제주도의 아름다움에 반해 정년 후 제주도에 정착하고 싶어 미로공원을 구상했다. 제주도를 사랑하는 외국인이 구상한 김녕미로공원, 제주도를 찾은 가족단위 여행객이나 연인 등 남녀노소 누구나 교육과 휴식,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글·사진=이재형 기자 1800916@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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