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선진당이 내홍에 휘말렸다. 선진당을 창당했던 이회창 전 대표가 지난 20일 탈당한 지 닷새 만에 60여명이 또 다시 탈당했다. 동반 탈당 인사들이 나올 걸로 예측되긴 했으나 막상 그게 현실화되자 그 여파가 심상치 않다. 선진당에 불고 있는 인적, 제도적 변화의 바람이 순풍(順風)이 될 건지 두고 볼 일이다.

이 전 대표가 탈당한 것은 당의 정체성 변화, 당내 자신의 위상 및 역할 축소 등에 따른 부담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이 전 대표가 "전당대회 이전에 당을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밝힌 대목에서 그 일단을 읽을 수 있다. 당명이 선진통일당(약칭 통일당)으로 바뀌고, 새로운 정강·정책과 당헌도 나왔다. 이인제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마련한 당 쇄신안은 내일(29일) 전당대회에서 확정된다. 선진당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계승한다는 전제를 깔았지만 이념상으론 종전보다는 중도 쪽으로 선회했다. 범국민정당을 표방한 결과다.

4년 전 자신이 창당했던 선진당을 떠나야만 했던 이 전 대표의 심사가 편할 리는 없을 것이다. 새로운 당명 발표 하루 전에 서둘러 떠나는 뒷모습에 허망한 그의 정치역정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15년 전 대선 승리를 눈앞에서 놓치게 한 '경선 불복'의 장본인 이인제에게 당 오너자리를 넘겨주고 물러나는 꼴이 됐으니 만감이 교차할 법하다. '끈질긴 악연(惡緣)'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회창-이인제-심대평 간에 서로 얽히고설킨 그물 고리에는 드라마틱한 요소가 다분하다. 2008년 2월 창당한 선진당은 이회창-심대평 연대의 신뢰관계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국회의원 18석을 확보했을 때만 해도 뭔가 잠재력을 확인하는 듯 했었다. 하지만 그러한 신뢰관계도 잠시뿐이었다. 원인 없는 결과란 없다. 지난해 9월 8일 이들 3자가 '충청권 정치 통합'이라는 명분 아래 만찬자리를 가졌을 때를 상기해보자. 공동목표 달성을 위한 명분만 갖추면 못할 게 없는 게 정치다. 오월동주(吳越同舟)를 연상케 한다. 심대평 전 대표가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나자 이인제 비대위 체제가 출범하게 된 과정 모두 연속선상에 있다.

내일 전당대회에서 이변이 없는 한 이인제 비대위원장이 당 대표에 오르게 될 것이다. 새로운 지도부 출범과 함께 어떤 정책과 비전으로 국민에게 어필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탈당파들이 제기한 '이인제 사당화(私黨化)' 문제로 시끄럽다. 이들은 쇄신안 마련 과정에 대한 불만과 함께 당협 위원장 임명에 대해서도 이견을 표출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전당대회 대의원 명부 조작 의혹도 나와 당내 분란이 지속되고 있는 마당이다. 당권을 둘러싼 갈등 성격이 짙다.

인물 영입을 싸고도 말들이 많다. 이신범·이원복 전의원 등 32명이 선진당에 입당했다. 이들이 누구인가. '국민생각' 소속의 인사들이다. '국민생각'은 4·13총선에서 정당 득표율 0.7%로 저조한데다 당선자를 한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정당법상 정당 유지 요건인 2%를 채우지 못해 등록이 자동취소되고 말았다. 정치적인 유랑인 처지인 이들을 영입한 것은 '이인제 사람 심기'의 일환이라는 당내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인제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국민생각의 대표였던 박세일 교수를 영입하려는 이 위원장의 방침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의견이 다수를 이룬다. 박 교수는 2005년 3월 당시 행정도시법의 국회통과에 반발,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직을 버렸다. 따지고 보면 이인제 비대위원장도 세종시 수정안 논란 당시 충청권에선 유일하게 수정안에 찬성했었다. 정치적 소신이라고 하기에 앞서 충청인에겐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사안이어서 이에 대한 해명도 나와야 한다.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공공연하게 탈당을 거론하며 자신의 거취를 고심하고 있는 마당이다. 선진당이 오늘의 위기를 딛고 전국정당화로 가는 길이 그리 순탄치 만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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