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와 두 아들, 며느리, 손자와 함께 한집에서 살고 있는 이덕년 씨 가족. 이덕희 기자 withcrew@cctoday.co.kr  
 

핵가족 시대인 요즘 더 이상 대가족을 이룬 가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충북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 이덕년(56) 씨의 가정은 직계 4대가 함께 산다. 이 씨의 어머니 최현순(91) 씨와 큰 아들 부부, 미혼인 작은아들, 손녀 손자에 이르기까지 무려 4대가 방 세칸 집에서 알콩달콩 모여 살고 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등 각종 기념일로 가득 찬 5월. 이 집에서는 언제나 화목함이 넘쳐흐른다. 요즘 이 씨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유독 할아버지를 따르는 큰 손녀 수연(7)양과 선웅(5) 군의 애교와 생후 8개월 된 막내 손녀 수지(1) 양의 재롱을 보고 있으면 근무 시간도 잊기 일쑤다. 15평 남짓 공간에서 9명의 대가족이 살고 있지만 이 씨 가족에게는 세상 어떤 곳보다 따뜻하고 포근한 공간이다.

이 씨의 집이 이렇게 대가족을 이루게 된 사연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머니를 모시던 이 씨의 큰 형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삼형제 중 막내인 덕년 씨가 어머니를 모시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1998년 풍족하진 않았지만 부족함 없던 이 씨의 가정에 IMF는 차가운 현실로 다가왔다.

졸지에 직장을 잃은 이 씨는 집 근처 아파트 경비 일을 하며 노모를 부양하면서 가정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그에게 부인 최익순(53) 씨는 언제나 든든한 지원군이다. 30년 가까이 시부모를 모시면서 단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전자전일까. 큰 아들 승호(29) 씨도 7년 전 결혼을 하면서 쉽지 않은 결정을 했다. 여느 젊은이들처럼 분가를 생각할 법도 했지만 승호 씨는 “어린 시절 조부모와 살면서 느꼈던 따뜻한 가족의 정을 아이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9명의 대가족이 한 공간에서 살다보면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침마다 집안에 하나 뿐인 화장실 쟁탈전과 대가족의 한 끼 식사를 준비하는 것 또한 며느리 오은미(28) 씨에게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오 씨는 매운 음식을 먹으면 안되는 할머니를 위해 두 종류의 상차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오 씨는 “번거로운 일이지만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가족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어 든든하다”고 말한다. 4대가 한 공간에서 살다보니 갈등이 없을 리 없다. 승호 씨 부부는 집안 어른들의 눈치를 보는 게 가끔 힘들다고 했다.

부부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극장을 한번 가려고 해도 할머니의 식사 시간을 챙겨야 하고 아이들을 부모님께 맡겨 두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승호 씨는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일일이 이해시킬 수는 없지만 일단 용서를 구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순서”라고 말했다.

이덕년 씨 부부도 어른이라고 그저 아들 부부에게 대접을받으려 하지는 않는다. 이 씨는 ‘남자가 주방에 들어가면 안된다’는 말도 옛말이라며 며느리의 설거지를 돕는 등 권위적인 모습에서 탈피하려 노력한다.

이처럼 이 씨의 집에서는 세대 간의 격차를 느낄 수 없다. 가족이 함께함으로 인해 아이들도 스스럼없이 할아버지 등에 올라타거나 안겨 함께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하면서 장난을 친다. 전형적인 ‘열린 가정’이다. 해법은 바로 ‘배려’와 ‘순종’이다.

부모는 자녀들을 한결 같이 사랑으로 대하고, 자녀들은 윗사람을 공경하고 순종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모든 식구들이 서로에 대한 배려와 희생이 몸에 배 있다. 누구 한 사람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스스로 가정의 규칙을 일궈 나가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이 씨는 부모님을 모시는 사람들에게 “출필고반필면(出必告反必面집 밖을 나갈 때는 반드시 어른께 아뢰고, 돌아오면 반드시 얼굴을 비춰야 한다는 뜻)만 잘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에 청주시도 8일 어버이날을 맞아 효심과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이 씨에게 '효부상'을 시상할 예정이다.

김용언 기자 whenikiss@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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