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여론 수렴절차 없이 중앙정부 주도로 시·군 통폐합을 가능케 한 지방자치제도 개편안에 동의할 수 없다. 시·군 통폐합의 기본 전제조건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의견수렴이다.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시·군 통폐합을 이런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면 엄청난 저항에 부닥치고 말 것이다. 아무리 통폐합 대상 지역이라고 해서 주민의견을 생략하고 통합을 추진하는 건 곤란하다.

대통령 소속 지방행정체제 개편추진위원회는 지난해 시·군 통폐합 대상으로 분류된 자치지역에 한해 주민 여론조사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통폐합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지방자치제도 개편안을 확정했다. 국가 주도로 통폐합을 추진하게끔 길을 터놓은 것이다. 이대로라면 충남 홍성군과 예산군은 주민 의견과는 무관하게 국가 주도로 통폐합이 가능하게 됐다. 시·군 통합과 관련 홍성군과 예산군 주민들의 의견은 서로 엇갈린다.

시·군 통폐합의 당위성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동일한 생활권, 동일한 문화권임에도 자치구를 서로 달리하는 곳이 많다. 정치적 이해타산 등에 의해 획정된 자치구가 수두룩해 엄청난 행정력과 예산을 낭비하고 있는 게 주지의 사실이다. 이걸 바로잡겠다는 정부 방침에는 수긍하나 강제력이 동반 돼서는 곤란하다. 시·군 통폐합과 같은 중차대한 사안을 결정하려면 절차와 원칙에 따라야 한다. 청주·청원 통폐합이 성사 단계에서 3번씩이나 번번이 무산된 것도 이런 기본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시·군 통폐합 시 주민의 자율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원칙이 어쩌다 변질됐는지 모르겠다. 이번 확정안은 지방행정체제 개편추진위원회 내부에서조차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기본 취지와도 맞지 않으니 그럴 만도 하다. 충남도와 예산·홍성군 역시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정부에 지역의 여론을 전달했음에도 전혀 수용되지 않은 탓이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추진위원회는 오늘 예산과 홍성을 방문하기로 돼 있다. 여기서 지역 여론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켜줄 필요가 있다. 이번에 확정된 반(反)자치적인 개편안이 그대로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돼선 안 된다. 강조하건대 시·군통폐합은 학계 지역사회 시민단체 등 다양한 의견 청취 과정을 거쳐야 마땅하다. 이런 공론화나 국민적 합의 없이 효율성만 내세우다보면 심각한 부작용에 직면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Posted by 충투 기자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