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디 넓은 땅, 수없이 많고 많은 사람, 볼거리, 먹거리의 천국 중국. 우리나라 여행사는 중국이 없으면 절반이 사라진다는 농담 섞인 말이 완전히 허구가 아닐 정도로 수많은 중국 여행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사이에서 조만간 충칭·은시 지역 상품이 새롭게 부상할 전망이다. 중국 최대 도시 중 하나인 충칭(重慶·중경)과 자연현상으로 이뤄진 다양한 볼거리가 풍부한 은시(恩施)는 아직까지 한국 관광객들에게는 생소한 지역임은 분명하다. 베이징, 상하이, 장가계, 계림, 황산 등 중국 하면 떠오르는 관광지들의 틈새를 노려 새로운 관광자원을 창출해가고 있는 충칭과 은시를 3박 4일의 일정으로 둘러봤다.

   
▲ 은시대협곡의 아찔한 절벽 잔도. 이한성 기자
◆천혜의 관광자원 갖춘 은시

후베이성(湖北省) 서남부 산간지방인 은시는 한국 관광객들에게는 더욱 생소한 곳이다. 충칭에서 고속도로를 5시간여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은시시(市)는 한족 이외에 투자족(土家族)과 먀오족(苗族)이 대부분의 인구를 차지하고 있다.

은시의 자랑은 무엇보다 자연이 만든 그대로의 풍광이다. 협곡, 석림, 동굴 등 물과 공기가 얽히고 설켜 수십억 년간 만들어낸 지형 자체가 관광자원인 축복받은 곳 은시를 찾았다.

◆자연이 만든 최고의 작품 은시대협곡

은시 시내에서 차량으로 1시간 40분 가량 좁은 산길을 달리면 은시의 자랑이자 은시 최고의 관광자원인 은시대협곡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15분을 더 가면 은시대협곡 관광지구 입구에 내리게 된다.

고개를 돌리면 온통 절벽으로 이뤄진 산이다. 해발고도 1800m 가량의 높은 절벽산은 ‘웅장’이라는 단어 이외에는 그 어떠한 수식어를 붙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뽐낸다.

   
▲ 은시대협곡의 절벽 잔도

평소 운동부족에 허덕이던 기자에게는 과장 섞어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들이 압박으로 다가왔지만 은시대협곡의 절벽 잔도(棧道)에 대한 기대감에 한칸 한칸 발을 내디뎠다. 턱까지 차는 숨을 몰아쉬며 30여 분 계단을 올랐을 즈음 좁은 동굴로 향하는 계단이 보였다. 바로 잔도의 시작점이었다. 좁고 짧은 동굴을 지나자 눈앞에는 아찔한 절벽이 펼쳐졌다. 식상한 표현으로 ‘깎아지른’ 절벽 중간부분에는 폭이 2m도 안될 법한 잔도가 이어져 있었다.

기자의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무서워서가 아니라 지금껏 힘들게 올라온 수많은 계단들 탓이라 애써 위로하며 바지를 쥐어 잡고 엄청난 높이에 위태롭게 자리 잡은 잔도에 첫 발을 올려놓았다. 식은땀이었을지 아니면 오랜만의 운동 효과로 나온 꿀땀이었을지 모를 땀줄기가 등을 세로로 가로질렀다. 과연 이 길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과 대체 왜 만들어서 이 길을 힘들게 걸어야만 하나라는 원망이 교차했다.

그러나 그 원망 섞인 감정은 잔도 초입을 지나며 금세 수그러들었고 눈앞에 펼쳐진 풍광과 시원한 바람에 한껏 매료되기 시작했다. 잔도에서 본 지상(地上?)은 저 길을 버스로 어떻게 올라왔을까 싶은 꼬불꼬불한 차도와 그 길로 열심히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셔틀버스가 그저 현미경으로 봤던 세포크기에 불과할 정도로 멀어보였다. 잔도 아래 까마득한 땅은 기자가 방문했던 당시에는 눈이 녹지 않아 온통 흰색이었지만 3월 중순 이후부터 4월 말까지는 은시시정부가 심어놓은 유채꽃이 만발하며 노란 빛으로 물들 예정이다.

애써 결연한 표정으로 주저앉고 싶은 심정을 숨겨가며 잔도를 통과하자, 잔도의 풍경과는 또 다른 은시대협곡의 보물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많은 형상의 수백 개의 기암괴석들이 촛대바위, 모자(母子)바위, 코끼리바위 등의 이름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냈다. 4시간 여의 대협곡 트래킹 코스(?)를 정복한 뒤 내려와 초입부터 말미까지를 눈으로 훑고 나니 저기를 어떻게 다녀왔나 싶었지만 다시 한 번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밀려왔다.

   
▲ 등용동굴 내부에서 벌어지는 투자족 민속쇼. 이한성 기자
◆규모에 주눅든 등용동굴, 지구 역사 품은 사포아석림

은시대협곡 관광을 마치고 투자족 토속음식으로 식사를 마친 후 기자는 등용동굴(登龍堀)로 향했다. 우리나라에도 환선굴, 고수동굴 등 수려한 내부를 뽐내는 동굴이 많지 않던가. 그 같은 아기자기한 동굴관광에 대한 기대는 등용동굴의 입구에서 ‘역시 중국의 규모는 다르다’라는 결론으로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용이 오른 동굴이라 이름 붙여진 등용굴의 입구는 사진으로는 도저히 설명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났다. 평균높이 125m, 길이 59.5㎞의 이 동굴은 사람을 한명 한명 들어가게 하면 2000만 명이 있어야 채울 수 있으며, 헬리콥터가 자유자재로 날아다닐 수 있는 크기다. 셔틀전동차로 동굴 안을 7~8분을 달리자 웅장한 무대가 보였고, 그 무대에서는 은시지역 원주민인 투자족의 일상을 춤과 노래로 표현한 쇼가 벌어지고 있었다. 동절기라 오후 3시와 4시 두 차례에 걸쳐 벌어지는 투자족 민속쇼는 5월부터는 오전에 시작된다.

힘든 하루 관광을 마치고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찾아간 곳은 사포아 석림(石林)이었다. 개발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아 아직 많은 관광객이 거치지 않은 이 곳은 40억 년 전 이곳이 바다였음을 드러내는 수많은 지층들이 표면으로 드러나 울창한 돌숲을 이루고 있었다. 평균높이 20m 가량의 지층들 중간중간에는 고생대, 신생대에 살았던 각종 동·식물들의 화석도 제법 찾아볼 수 있어 지구의 역사를 가늠케 한다.

   
▲ 투자족 족장이 살던 투자성(土家城). 이한성 기자
이처럼 개발 초기이거나 아직도 개발되지 않은 관광자원이 가득한 은시 지역은 중국 여행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은시정부 역시 중국 서남부 여행의 중심지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진조형(陳祖珩) 은시토가족묘족자치주여행협회장은 “중국 내부에서도 은시가 알려진 것이 3년이 채 되지 않아 기존 여행지와 비교할 때 중국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곳”이라며 “쇼핑, 숙박은 물론 여행지구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으니 한국 여행객들의 큰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중국 4대도시 충칭

중·고등학교 재학 당시 교과서에서 이름은 한 번 들어봤을 법한 충칭. 충칭은 수도 베이징을 비롯해 상하이, 텐진과 함께 중국의 직할시로 대한민국의 마지막 임시정부가 위치했던 곳이자 중국 쓰촨성(四川省)의 경제·문화 중심지다. 그럼에도 충칭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느낌이 드는 도시다.

아시아나항공이 충칭 직항을 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많은 한국 관광객이 찾은 곳은 아니다. 중국 서부의 황량함을 생각했던 충칭에 대한 기자의 생각은 완전히 틀려버렸다. 수많은 고층빌딩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차량행렬, 거리를 가득 채운 인파들은 말 그대로 중국 대표 도시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 충칭 인민대례당의 야경. 이한성 기자
◆화려한 야경, 중국 서부 최고 도시 충칭

중국 4대 하천의 하나인 중국인의 자존심 양쯔강과 가릉강의 합류지점에 위치한 충칭은 현재 시내에만 319만 명의 인구가 모여 있는 대도시 중의 대도시다. 은시에서 5시간 여를 달려 해가 지고 난 뒤에 도착한 충칭의 밤거리는 상하이, 홍콩을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야경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치 상하이의 외탄과 포동지구를 떠오르게 하는 조천문 부두에서 바라본 충칭 시내의 야경은 이곳을 왜 중국 서부 최대 도시라 부르는 지 한 순간에 이해시켰다.

충칭시인민대례당(人民大禮堂)은 충칭시 서부에 위치한 충칭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화려한 야경과 웅장한 규모에 다시금 이곳이 중국임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인민대례당은 고대 건축기법을 모방한 동방건축방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중국 현대 건축물전에서 2위를 차지한 바 있다. 대례당 정문에는 화려한 채색의 비루(牌樓)가 있는데, 기둥 안으로 새로 건설된 규모의 웅대한 인민광장이 들어서 있다. 마치 베이징에서 봤던 천단을 느끼게 한 인민대례당 발밑의 인민광장에는 밤이 깊어가고 있음에도 수천 명의 충칭시민들이 운동과 분수의 아름다움을 한껏 즐기고 있었다.

   
▲ 충칭시 시가지 내에 위치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이한성 기자
◆임시정부의 마지막 거처, 이곳에서 해방을 맞다

호텔방 창문으로 비치는 충칭시내의 야경을 뒤로하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귀국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을 향하기 전 들른 곳은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의 마지막 임시정부 옛터였다. 충칭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개발된 주변 시가지와는 달리 1945년의 딱 그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느 정도 체계가 갖춰진 뒤 설립된 만큼 충칭 임시정부는 상하이의 임시정부보다 그 규모나 역할 면에서 더 크다.

당시 임시정부가 갖췄던 각 부처별로 전시실이 마련돼 있으며 충칭 임시정부의 가장 큰 숙원이던 광복군과 관련한 유물과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구공원 의거 이후 심해진 일본군의 압박으로 인해 상해 임시정부는 이후 항주, 가흥, 진강, 장사, 광주, 유주, 기강 등지를 거쳐 1940년에 충칭에 들어섰다. 충칭에서도 양류가, 석판가, 오사야항 등으로 옮겨 다니다 마지막 거처로 현재 이곳에 정착한 뒤 해방을 맞았다. 외국에 나가면 자신도 모르게 애국자가 된다더니 특히 우리 민족을 위해 힘쓰던 선조들의 유품들은 충칭의 마지막 일정을 더욱 숙연하게 만들었다.

3박4일의 짧은 일정이다 보니 충칭, 은시의 본 모습은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생각되지만 중국 신흥관광상품으로의 충분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천혜의 자연을 관광상품화하고, 충칭에서 북경·상해와 또 다른 도시의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중국 여행 지도는 동부 해안 도시에서 서남부를 향하고 있다.

중국 서부 대표도시 충칭의 활기와 은시대협곡의 웅장한 풍광을 그 누구보다 먼저 눈에 담고 올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충칭·은시 여행은 그 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중국 동부 베이징·상하이를 비롯한 장가계, 계림, 황산 등과는 또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한다.

이한성 기자 hansoung@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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