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새벽 1시30분. 어둠이 깔린 천안시 동남구 사직동 소재 중앙시장 한복가게에서 적막을 깨는 셔터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 순찰방향을 바꾼 경비원은 한복을 훔쳐 나오는 절도범을 붙잡았다. 손전등에 비춰진 절도범은 솜털도 가시지 않은 아이였다. 경찰에 인계된 절도범 동호(가명·13)는 영하의 바깥 날씨만큼 버티기 힘들었던 범행 동기를 털어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 후 각각 재혼을 한 터라 동호가 마음을 둘 수 있는 곳은 할머니가 전부였다. 동호는 겨울을 나기 위해 11살과 8살 된 두 남동생과 함께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덕전리 할머니집을 찾았다. 그러나 형편이 어려운 할머니의 집도 겨울나기가 만만치 않았다. 건강 악화로 벌이가 없었던 할머니의 소득은 읍사무소에서 지원하는 보조금 10여만 원이 전부였다.

영하의 날씨에도 기름 살 돈이 없어 방안은 얼음장 같이 차가웠고, 4식구의 몸을 감싸줄 수 있는 건 오직 빨래집게로 고정된 여름이불 2개 뿐 이었다.

할머니는 방안에서 떨고 있는 3명의 손자들을 보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신세를 한탄했고, 이를 지켜본 동호는 어떻게든 겨울이불과 먹을거리를 준비하겠다는 결심을 했고, 이날 한복을 훔친 것이다. 동호의 사연을 알게 된 천안동남경찰서 문성파출소 이태영 경사와 최영민 순경은 동호의 손에 수갑을 채우는 대신 한복집 주인을 찾아 용서를 구했다.

한복집 주인 역시 동호의 사연을 전해 듣고, 진열대에 있는 겨울이불을 선뜻 기증하며, 오히려 경찰들에게 동호를 용서해달라고, 당부했다. 경찰은 동호를 훈방조치했다. 촉법소년(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소년으로 비행성이 있는 행위를 한 자)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 훈방이 가능하다.

경찰은 또 성금 20만 원과 라면 5박스, 동호가 그토록 원하던 겨울이불을 사서 동호 할머니께 전달했고, 이태영 경사와 최영민 순경은 앞으로 아이들을 수시로 찾아가 돌보겠다고 약속했다.

천안=유창림 기자 yoo772001@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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