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 해체과정에서 부여 능산리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와 견줄 만한 국보급 사리장엄이 발견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9일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현장에서 해체작업 중 발견된 ‘금제사리기’ 등 중요 유물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미륵사지 사리장엄은 가공수법이 정교하고, 세련돼 국보급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유물로 평가받았다.

더구나 사리장엄은 다른 사례에서 찾아보기 힘든 다양한 종류가 일괄적으로 출토돼 관계자들의 주목을 한껏 이끌어냈다.

특히 백제시대 사리장엄이 발견된 것은 지난 2007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부여 왕흥사지 목탑터에서 출토된 창왕시대(577년) 제작품에 이어 두 번째로 미륵사 창건에 대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기록의 정확성이 입증되는 의미를 갖는다.

또 백제 석탑의 사리봉안 기법과 의례를 새롭게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는 의미도 갖는다.

문화재연구소는 미륵사지 사리장엄 발굴을 충남 공주 무령왕릉 발굴과 부여 능산리 백제금동대향로로 조사 이래 백제지역 최대의 고고학적 성과로 판단했다.

사리장엄의 핵인 금제사리호는 높이 13㎝, 어깨 폭 7.7㎝의 작은 병 형식으로 돼 있으며, X선 투시 결과 내함과 외함의 이중구조로 구성돼 있음이 확인됐다.

특히 사리호 표면에는 다양한 문양과 세공기법들이 각양각색으로 드러나 백제시대의 금속공예가 절정에 달한 것으로 평가됐다.

사리장엄 중 미륵사지 사찰 창건 내력을 확인해 주는 금제사리봉안기가 발견됐다.

이는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설화로 전해지는 미륵사지 창건 시기 및 주체를 명확히 밝히는 귀중한 자료로 가로 15.5㎝, 세로 10.5㎝ 크기의 금판에 음각 주칠(朱漆)한 형태로 앞·뒤면 글씨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앞면에는 1행 9글자씩 총 11행, 99자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11행, 총 94자가 적혀 있다.

금제사리봉안기에는 백제 무왕의 왕후가 재물을 희사해 가람을 창건했고, 기해년(639년) 사리를 봉안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미륵사의 창건 목적과 시주, 석탑 건립연대 등을 정확히 알 수 있는 문헌사 연구 보완 차원의 금석문 자료인 동시에 백제시대 서체 연구에도 큰 획을 그을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금제사리봉안기에서는 “백제 왕후가 좌평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에 선인을 심어”라는 구절이 표현돼 신라 선화공주에 의한 창건에 의문을 갖게 하고 있다.

사택(沙宅)은 백제 당시 8대 성(姓) 중 하나이고, 백제 무왕 당시 시대적 정황상 신라 공주가 무왕의 왕후가 될 수 있느냐에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문화재 관계자들은 현재 금제사리봉안기의 완전한 해석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한 판단을 유보하고 있어 향후 금제사리봉안기의 해석에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최장준 기자 thispro@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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