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각 지역·업종별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피해 구제책도 없이 모호한 핑크빛 전망만을 기준으로 한·미 FTA 비준안을 강행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부는 한·미 FTA체결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농업이나 영세 유통·제조업체들의 입장을 조율하거나 각 지역에서 경제·행정적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과의 협의도 없이 비준안을 선 처리한 후 이제 와서야 대책을 논의하는 등 일의 앞뒤가 바뀌었다는 비난을 스스로 사고 있다.

27일 FTA국내대책본부가 밝힌 대전지역 한·미 FTA 관련 자료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의 단계적 관세 철폐로 지역의 첨단기계 등의 일부 업종에서 영세업체들의 경영난이 우려되지만 중·장기적으로 대일역조 개선 및 기술경쟁력 제고, 산업고도화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내놨다.

정부와 지자체는 최근 이 같은 자료를 바탕으로 대책회의를 수차례 진행했으며, 향후 피해가 예상되는 업종을 중심으로 지원책이나 대응방안을 논의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러나 경제 관련 전문가나 관련 업종 종사자들은 정부와 여당이 제시한 전망에 대해 "무슨 근거로 영세 제조·유통업체들의 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보는지, 자유무역 협정이 모든 업종·업체의 만병통치약으로 불릴 수 있는지 그 저의가 궁금하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선 지역 제조업체들의 여건이 녹록치 않다. 지역의 전기·전자 등 일부 업종의 경우 관세 철폐로 미국 시장의 점유율이 소폭 상승할 수 있지만 첨단부품·소재 수입은 더 크게 늘면서 규모가 작은 중소·벤처기업들의 경영난이 가중될 위기에 처했다. 기계·금속도 저가 제품이 아닌 고급·고가의 제품은 미국산의 유입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화학공업의 경우 대미 수출비중(12.4%)보다 수입비중(26.6%)이 2배 이상 높아 매년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어 이들 업종의 줄도산도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문제는 정부가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이들 업종에 대해 막연한 핑크빛 전망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이들 업체가 어떤 방향으로 FTA를 준비해야 하는지, 어떤 지원이 가능한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한 채 업체 스스로 자생력을 키울 것이라는 것이 현재까지 대책의 전부인 셈이다.

제조업 업종별 관세도 현재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대부분 2~4%대의 낮은 세율인 반면 한국의 평균 관세율은 최저 5%(전자)로, 평균 6~9%대의 높은 관세율을 유지하고 있어 이번 한·미 FTA가 한국보다는 미국에 더 유리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정부가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일방적으로 진행하면서 피해가 예상되는 업종 종사자는 물론 지자체와도 협의를 생략했다"며 "당장 자동차세 등 세원이 줄어들고, 미국계 유통업체들의 대규모 진출이 예상되지만 이를 제재하거나 피해 지원을 위한 대책마련은 요원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박진환 기자 pow17@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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