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오후 직지대모 고 박병선 박사의 빈소가 마련된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조문객들의 행렬이 이어져 그의 넋을 기렸다. 김용언 기자 whenikiss@cctoday.co.kr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이하 직지)의 실체를 세상에 처음 알리고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 기여한 재불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가 힘겨운 암투병 끝에 23일(한국시간) 프랑스에서 타계했다. 생전 박 박사가 제2의 고향으로 여겼던 청주에는 분향소가 마련되고 애도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박병선 박사 타계

지난해 1월 한국에서 직장암 수술을 받고 프랑스로 돌아간 박 박사는 파리시내 15구 잔 가르니에 병원에서 요양을 해오던 중 한국시간으로 23일 오전 6시 40분경 별세했다고 병원과 유족 측이 전했다. 향년 83세.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은 일단 박 박사의 빈소를 주불한국문화원에 차린 뒤 유족 등과 장례절차를 논의중이며, 평소 박 박사는 자신이 숨지면 화장해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해변에 유해를 뿌려줄 것을 당분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박 박사는 유언으로 그동안 준비작업을 해온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2편'의 저술을 마무리 지어달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박 박사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 이명박 대통령은 조전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을 대표해 박병선 박사님 가족 모두에게 깊은 위로를 드리며, 고인의 명복을 기원한다"며 "그의 숭고한 업적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현재 정부는 박 박사가 지난 1967년 발생한 동백림 사건 이후 프랑스로 귀화했지만 그동안의 국가적 공로가 큰 점을 인정,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청주시 분향소 설치… 추모 물결

'직지의 고장' 청주에도 박 박사의 업적을 기리고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분향소가 고인쇄박물관에 마련돼 오는 27일까지 운영된다.

지난 1998년 청주시는 '직지'의 실체를 세상에 처음 알린 박 박사의 공로를 인정해 '명예시민증'을 수여했으며, 박 박사 또한 직접적인 연고가 없음에도 생전 "청주는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해왔다.

분향소를 직접 찾은 한범덕 청주시장은 "청주와 대한민국을 위해 큰 일을 하신 고인을 잃은 것을 67만 청주시민은 깊이 슬퍼하고 있다"며 "우리 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했던 고인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시민 모두가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애도를 표했다.

앞서 지난 11일 박 박사가 요양중이던 병원을 직접 위문 방문했던 반재홍 고인쇄박물관장은 "당시 병세가 악화돼 말씀은 하지 못하셨지만 밝은 미소로 반가움을 전하셨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며 "내년에 열릴 예정인 직지축제에서 박 박사를 기리기 위한 학술회의 개최를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이시종 충북지사도 박 박사의 명복을 비는 전문을 통해 "잠자던 직지를 깨워 대한민국의 문화적 자긍심을 세계만방에 드높여준 박 박사님의 타계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박사님은 충북인의 위대한 어머니, 직지의 대모로 영원히 가슴 속에 간직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영원한 '직지대모'

박 박사는 프랑스국립도서관(BNF)에서 사서로 근무하던 지난 1979년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를 확인해 국내에 알림으로써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받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워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이에 앞서 지난 1972년에는 '직지'의 존재를 처음 발견해 세상에 알리고, 이를 계기로 '흥덕사'가 있던 청주는 1455년 나온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 빠른 시기에 금속활자본을 내놓은 고장으로 국내외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당시 박 박사는 직지가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임을 직접 실험을 통해 밝혀내기도 했다. 이 때부터 박 박사는 '직지대모'란 이름을 얻게 됐다.

이후에도 박 박사는 결혼도 포기하고 30여년의 세월 동안 홀로 외규장각 의궤목록과 요약본을 불어로 정리하고 '병인년, 조선을 침노하다'라는 한국어·프랑스어 서적을 발간해 세계에 배포하며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앞장섰다.

특히 지난 2009년 유네스코 직지상 시상식차 내한해 직장암 진단을 받고 3차례 수술을 받은 박 박사는 힘겨운 몸을 이끌고 프랑스로 돌아가 최근까지 병인양요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며 저술활동을 이어가는 등 마지막까지 우리 문화에 대한 열의를 불태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창해 기자 widesea@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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