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용 영상기록장치인 이른바 ‘블랙박스’가 운전자들 사이에 인기를 누리고 있으나 정작 사고 발생 시 증거 자료 활용을 위한 의무 규정이 없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가해차량 운전자의 경우 블랙박스가 설치돼 있어도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영상을 삭제해 경찰의 사고 조사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14일 대전과 충남지방경찰청 등에 따르면 최근 차량용 블랙박스는 교통사고 원인 규명과 분쟁해소에 대비하고, 개인의 평소 운전 습관 교정을 목적으로 일반 승용차는 물론 버스나 택시 등에 잇따라 설치하고 있다. 문제는 블랙박스의 경우 사유재산으로 분류돼 사고 시 제출에 대한 의무가 없어 차량 소유주가 불리한 입장인 경우 영상물 삭제나 메모리 파괴 등을 통해 증거를 인멸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관련 법규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모든 차량에 대한 장착이 완료된 택시 기사 등은 이런 사실을 알고, 사고 과실 여부를 따져 입맛대로 영상 제출을 선택하고 있어 경찰 조사는 물론 피해자 규명에도 애를 먹고 있다.

또 단순 접촉사고가 아닌 사망사고 등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때 가해자가 증거 인멸을 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 목격자가 없을 경우 사건이 장기화할 우려도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물론 경찰이 영장을 신청해 영상 자료를 청구를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가해차량 소유주들이 ‘잃어버렸다’, ‘녹화된 것이 없다’고 주장할 경우 이를 제재할 방법도 없다는 점이다.

한 경찰서 교통조사계 관계자는 “블랙박스 설치가 증가하면서 교통사고 시 중요 자료로 사용되고 있지만 정작 운전자가 제출 자체를 거부하면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며 “사고의 빠른 수습과 피해자를 위해서라도 영상자료에 대한 의무 제출에 관한 법률 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개인 구매로 설치 작업이 이뤄지는 차량에 대한 법규보다 먼저 시의 지원을 받아 모두 설치된 택시나 대중교통부터 메모리카드 의무 제출을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해 대전시 관계자는 “택시의 블랙박스는 사고 분별보다 기사들의 난폭운전 등 습관을 고쳐 시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설치된 만큼 법 규정이 정해지지 않는 이상 조치를 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은 지난 7월 차량 제조회사가 차량블랙박스를 의무적으로 장착하도록 하는 교통안전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양승민 기자 sm1004y@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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