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뷔 45주년을 맞은 남진이 본보 아줌마대축제 행사장에서 열정적인 공연을 선보인 후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호열 기자 kimhy@cctoday.co.kr  
 

‘살아있는 트로트의 전설’, ‘트로트의 황제’, ‘영원한 오빠’ 등 가수 남진을 수식하는 단어들은 화려함 그 자체다.

올해로 데뷔 45주년을 맞은 가수 남진이 지난 9일 충청투데이 주최 아줌마대축제의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 대전에 떴다.

공연을 앞두고 밴에서 내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기자를 비롯한 충청투데이 관계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날 공연의 최고 하이라이트를 책임져야 할 남진이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면서 거동조차 불편한 모습으로 공연장에 나타났기 때문.

과연 공연이나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까하는 공통된 걱정을 했던 모든 관계자들은 그의 공연이 시작되면서 또다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언제 다리를 절었냐는 듯 남진은 무대 위를 ‘펄펄 날아다녔기’ 때문이다.

프로의 모습 이상, 아니 말 그대로 전설의 모습을 보여준 ‘살아있는 트로트의 전설’ 남진을 만나봤다.

-데뷔 45주년을 맞았다. 감회가 남다를텐데.

“돌이켜보면 4년도 안된 것 같은데 벌써 4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렇게 보니 세월이 빠르기는 참 빠른 것 같다. 정말 엊그제 데뷔한 것 같은데. 이 모든 것이 팬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팬들의 사랑에 취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살아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사랑해주시는 팬들 덕분에 45주년 앵콜 공연까지 성황리에 마쳤다. 정말 기쁘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될 정도다.”

-데뷔 첫 무대가 기억이 나는지.

“어제가 데뷔 첫 무대였던 것처럼 아주 생생하다. 당시에는 TV 보급률이 낮았던 라디오 시대였다. 세종문화회관도 없었을 때 였으니까. 내 데뷔무데 역시 한 방송사의 라디오 공개방송이었다. 당시 신인으로 인기를 얻으려는 시점에서 공개방송 무대에 섰는데 정말 너무너무 떨려서 정신이 없던 기억이 난다. 그때 서울시민회관에 동생 첫 무대라고 누나가 구경을 왔는데 공연이 끝나고 누나가 ‘얼굴이 하도 빨개서 홍시감이 나오는 줄 알았다’며 웃으시더라. 그 정도로 긴장이 대단했다.”

-아직도 그렇게 무대에 서는 것이 긴장되나.

“당연하다. 지금도 긴장은 된다. 그러나 데뷔 때와 다른 점은 무대가 두렵기보다는 객석이 두렵다는 점이다. ‘내 공연이 제대로 될까? 내가 준비한 것 다 할 수 있을까?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관객에게 모두 전달이 될까’하는 걱정들이다. 데뷔 무대 때는 무대에 오르는 것 자체가 무서웠지만 지금은 그만큼 여유가 생겨 관객과의 호흡을 걱정하는 것이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준비한 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하고 내려오자는 생각을 한다. 그 긴장감은 사실 행복한 것 같다.”

-몸 상태가 상당히 안좋은 것 같다. 언뜻 보니 다리가 불편해 보이던데.

“눈치챘나?(웃음) 프로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좋지 않은 건데. 사실 전날(8일) 데뷔 45주년 기념 공연에서 격렬하게 춤을 추다가 다리를 좀 삐끗했다. 뼈에는 이상이 없는데 근육이 조금 놀랐다고 하더라. 워낙 뜻깊은 공연이다보니 조금 오버한 느낌이 있다. 그래도 무대는 끝까지 끝마치고 나왔다. 며칠 뒤면 괜찮아질 듯 하다.”

-그 다리로 오늘 공연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 신기할 정도다.

“팬들의 환호에 마취가 됐었다. 나 뿐 아니라 다른 가수들도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대 밑에서는 아파 죽을 것 같다가도 막상 무대 위에 오르면 아픈 줄을 모른다. 특히 환호와 함성이 가득한 아줌마대축제 같은 행사는 더 신이 난다. 내 노래를 따라 부르고, 함께 박수치고, 나에게 보내주는 팬들의 함성은 나에게는 가장 큰 마취제이자 흥분제다. 내려오니 또 조금 아픈 것 같다.(웃음)”

-벌써 3년째 대전의 아줌마대축제를 찾고 있다.

“데뷔 초 때 대전 공연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당시 대전에 한 극장공연을 왔을 때 정말 뜨거운 사랑을 넘치게 받았다. 가수는 사랑을 먹고 사는데 사랑을 받았으면 보답을 해야 하지 않나. 그 사랑을 잊을 수 없어 되도록이면 충청지역에서 하는 행사는 무대에 오르려고 노력한다. 기회가 좋아 아줌마대축제에 3년째 올 수 있었다. 충청도와 남진은 어느 정도 인연이 있는 것 같다.”

-남진에게 아줌마란 어떤 존재인가.

“한마디로 표현하면 ‘인연’이다. 지금 아줌마들과 남진은 분명 질긴 인연이 있다. 데뷔 초 소녀였고 아가씨였던 팬들이 지금은 50, 60대 아줌마들이 돼 있지 않나.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 졌지만 내 눈엔 아직도 소녀이고 아가씨들로 보인다. 아줌마들은 남진과 45년간 함께 숨쉬어 온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오늘 공연에서도 우리 아줌마들은 20대로 돌아간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마지막으로 남진을 수식하는 다양한 별명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이 있나.

“단연 ‘영원한 오빠’가 최고다. 오빠라고 불리는 시기는 남자라면 누구에게나 잠깐 왔다 가는 것이지만 나는 지금도 오빠 아닌가.(웃음) 나의 45년은 아줌마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빠일 수 있었다. 지난 1971년부터 무대에서 오빠라는 환호성을 들었다. 그때 팬클럽도 시작됐다. 내가 오빠의 원조라는 자부심에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나는 가장 많은 여동생들과의 추억을 나눈 오빠다.”

이한성 기자 hansoung@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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