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전체가 불경기의 그림자에 덮혀있고 특히나 경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에겐 ‘해고’란 두려움 그 자체일 것이다. 해고를 당하면 경력 단절뿐만 아니라 당장 먹고 살아갈 생계걱정을 해야 하고 실추된 명예와 자존감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더구나 요즘같이 취업하기 힘든 세상에 잘 다니던 회사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아침에 퇴출당하게 된다면, 떠날 마음의 채비를 갖추진 않고선 그 누구도 평정심을 가지긴 힘들 것이다.

영화 ‘로맨틱 크라운’은 인생의 전환점에 놓인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무탈하게 직장을 다니고 있던 한 남성을 급습하면서 시작한다. 해군 취사병으로 20년 간 복무한 주인공 ‘래리 크라운’(톰 행크스)은 퇴역 후 마트 관리직으로 몇 년 간 성실하게 일했지만 사측의 구조조정으로 하루아침에 정리해고 당한다.

래리는 부당 해고를 당했지만 사측을 상대로 고소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가 대학을 졸업하지 못해 직장에서 쫓겨났다고 생각하고 현실적인 대처 방안을 찾는다.

사회적인 신용을 좀 포기하는 대신 은행 빚을 탕감받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래리는 친구의 충고로 집 근처 전문대(커뮤니티 칼리지)에 입학하고 학장의 권유로 처음 등록한 스피치 수업에서 래리는 까칠한 여교수 ‘테이노’(줄리아 로버츠)를 만난다. 테이노는 철없이 소설가 행세를 하는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전문대에서 형편없는 학생들과 씨름해야 하는 처지에 불만으로 가득 차 무기력한 나날을 보낸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래리는 대학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만, 친절하고 활기찬 젊은 친구 ‘탈리아’(구구 바샤로)를 만나 조금씩 대학 생활에 흥미를 느낀다. 스피치에 서툴기만 한 래리를 한심하게 바라보던 테이노는 래리의 순수함과 따뜻함에 조금씩 호감을 갖고 남편과 심하게 싸운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만나 자기를 집에 데려다 준 래리와 짜릿한 입맞춤을 한다. 지겨운 남편과 이혼한 테이노는 본격적인 홀로서기에 나서고 일과 학업에 열심인 래리를 보면서 삶의 태도를 조금씩 바꿔 나간다.

◆톰행크스와 줄리아 로버츠의 해피엔딩 로맨틱 코미디

이처럼 영화는 회사에서 퇴출당한 뒤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늦깎이 대학생이 된 주인공이 도도한 여교수를 만나 벌어지는 파란만장한 캠퍼스 적응기를 담았다. 인생의 쓸쓸함을 맛본 중년 남녀의 사랑을 다뤘지만 여느 로맨틱 코미디 영화처럼 상투적이거나 유치하지 않다. 나이가 들었지만 사랑과 인생에 서툰 주인공 남녀가 앞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 과정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지면서 영화의 감성은 관객의 마음속에 서서히 스며들기 때문이다. 흘러가는 영상에 시선을 맡기다보면 어느덧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된다.

끝엔 오해가 풀리고 둘의 사랑이 완성된다는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을 보여주지만,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는 소소한 재미를 주는 에피소드들을 살리며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답게 줄리아 로버츠도 완벽한 연기를 보여준다. 최근작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개성있는 연기를 펼쳤던 로버츠는 이 영화에서 거침없는 괴팍한 성격에서 점점 사랑스런 여인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표현한다. 그의 스피치 강의 스타일이나 독특한 캐릭터의 일본교수가 강의하는 경제학 수업은 의외의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비록 래리가 집과 재산도 잃고 아르바이트로 스쿠터에 채울 기름 값만 겨우 벌면서 전문대학에 다니지만 영화는 작은 행복들이 감사하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직업을 잃거나 세상에 대한 믿음을 잃은 사람들이 달라진 환경에 어떻게 적응해 가고, 또 힘들어하는 지를 보여준다. 상영시간 99분. 12세 이상 관람가.

박주미 기자 jju1011@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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