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꾼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모두 타고나는 것은 아니다. 산은 산경(山徑)을 거닐며 산경(山景)을 보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그래서 산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 하지만 산깨나 탄다는 사람들은 종주(縱走)를 로망으로 삼는다. 능선에 있는 산길을 등강(登降)하면서 장시간, 장거리를 타는 것인데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자하는 인간의 욕망이기도 하다. 어디까지가 극한이고 어디가 궁극(窮極)인지를 확인하는 것. 길에게 묻고 산에게 인증 받는 노정(路程)인 셈이다. '극기 훈장'으로 통하는 백두대간이나 지리산, 불수도북(서울 불암산~수락산~도봉산~북한산 종주 50㎞:무박 2일)처럼 대전에도 종주 코스가 있다. 이름하여 '보만식계'다. 대전의 보문산(457.3m), 만인산(537.1m), 식장산(597.5m), 계족산(423m)의 머리글자를 딴 말이다. 대전의 남쪽에서 출발해 북동쪽까지 4개 산줄기를 따라 말발굽 모양(U)으로 도는 대장정이다. 거리는 약 58㎞이며, 크고 작은 봉우리 150여 개를 넘는다. 무박2일 종주를 한다면 빨리 걸어도 22시간 이상이 걸린다. 그 고단한 행군의 일부를 지난 주말 다녀왔다.



◆길을 가다

뜨끈뜨끈한 조간신문이 배달됐다. 그런데 습기를 머금은 종이질감의 낌새가 심상찮다. 200㎜ 호우를 동반한 강풍이 분다는 소식이 1면 귀퉁이에서 불안한 기압골을 형성하고 있다. 일찍이 알았다. 보만식계 종주를 기획한 날부터 보만식계를 무박2일로 종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며칠 동안 대한민국 자체가 장마전선에 갇혀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행로를 긴급하게 바꿀 수밖에 없었다. 보·만·식·계에서 '보'와 '계'를 빼버린 것이다. 두 곳만 안가도 최소 10시간 이상은 절약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물론 보문산과 계족산은 이미 수차례 다녀왔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기도 하다.

보만식계는 보문오거리(대전 중구)를 들머리로 시작해 회덕육교(대전 대덕구)를 날머리로 한다. 지리산처럼 웅장하거나 설악산같이 기암괴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종주산행 동안 고도 160~590m 사이를 오르내리면서 크고 작은 봉우리 150여 개를 넘는 강행군이다. 정진영 기자는 폭우의 중심부인 아산으로 숲 취재를 떠났고 '극한의 산행'은 이형규 기자와 함께 했다. 만인산 추부터널까지는 두 발이 아닌, 네 바퀴의 버스로 이동했다. 1시간 20분 소요. 이 거리를 두 발로 걸어갔다면 이미 해넘이를 맞았을 것이다.

만인산 자연학습원에서 정상을 향해 첫발을 뗐다. 연우(煙雨)에 젖은 매미 울음소리가 처연하다. 동시에 합창을 해대는데 솔숲이 쩌렁쩌렁 울린다. 길은 '깔딱고개'라 명명하지 않았는데도 숨이 끊어질 만큼 깔딱댄다. 너무 가파르다. 뒤꿈치를 들고 앞발로 힘차게 밀어 올려 디디며 걷는 데만 집중했다. '산이 높다한들 하늘아래 뫼이로다'라는 말은 한낱 수사(修辭)에 불과한 것이다. 오르고 올라도 산은 멀고 하늘은 높기만 하다. '평지형 인간’의 비애다. 물기에 젖은 숲의 그늘을 따라 계속 걷는다.

길들은 산허리의 오목한 자리들을 골라서 이리저리 굽이친다. 숨이 턱에 차 목울대에서 동물의 울음소리가 났다. 비로소 정상. 해발 537m에 이르는 만인산 정상에 오르면 금산 서대산과 정기봉이 보이고, 멀리로는 보문산과 식장산·천비산이 한눈에 아득히 들어온다.


◆길을 잃다

조선 초기 한 시객(詩客)은 만인산을 보고 ‘중첩한 산봉우리가 만발한 연꽃 같고 99뫼(山)의 물이 한곳으로 모여든다’며 경탄했다. 이 소식을 들은 왕실이 이곳에 태조 이성계의 태실을 축조했고, 옥계부사를 두어 관리토록 했다.

본디 태조의 태를 묻었다 하여 태봉산(胎封山)이라 불리다 만인산으로 바뀌었다. 태를 묻었던 능선은 쌍봉낙타령으로 남향이며, 태봉산의 북풍을 막을 뿐만 아니라 햇볕도 잘 드는 곳이다. 만인산 정상에서 능선을 타고 조금 오르니 갑자기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겹친다. '고통의 근저(根底)'가 눈에 밟힌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다시 오를 생각을 하면 처음보다 훨씬 더 아득한 탓이다.

여름의 숲은 어둑신하고 서늘하다. 능선을 가다보면 오래된 지층의 냄새가 난다. 그늘에서 습기를 잔뜩 머금은 낙엽들이 발길에 채일 때마다 비린내를 풍긴다. 능선은 강인하다가도 겸손하고, 겸손하다가도 억세다. 옥천 향수 300리를 13시간 30분 동안 자전거로 달리고, 대전서 청주까지 12시간 17분을 걸었던 기억이 앙금 되어 젖는다. 이쯤 되면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과 '뻔한 말'을 섞는다. "산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나요?" 산객은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한다. "거의 다 왔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절망을 주지 않으려고 희망적인 말을 던지는 거지만 백번이면 백번 거짓말이다. 결코 정상은, 눈앞에 있지 않다. 그들의 위로가 고맙지만 그들의 위로가 두렵기도 하다. 항시 길은 산을 피하면서 사람에게 달려들기 때문이다.

정기봉에서 식장산 가는 길은 골냄이고개, 541.4봉, 마달령, 410봉, 닭재, 망덕봉의 순서지만 어느 순간 푯말을 놓치면 길을 잃는다. 우리도 그랬다. 어느 순간, 서있는 곳이 어디인지 기연가미연가했다. 사람의 두 발자국이 없고 동물의 두 발자국만 보인다. 길을 잃었을 땐 전봇대나 물길을 따라가면 된다는 단순한 상식마저도 흐릿하다. 동행자의 얼굴빛도, 내 심장의 붉은빛도 두려움에 켕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새파란 숲이 걸어왔다. 새파랗게 질렸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우리의 도전이 무한도전이 아니라 '무(모)한' 도전이었단 말인가. 시원(始原)의 불빛이 사라지고 산행의 끝, 소멸이 보인다. 몸이 기진했을 때 풍경에는 기갈이 든다. 입산자가 많은 인산(人山)이었다면 덜 두려웠을 텐데 난산(亂山)이어서 더욱 애달프다. 동행자의 어깨에 얹은 손바닥의 무게만큼 엄청난 엄살이 엄습한다.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계곡물을 나침반 삼아 무작정 남행했다. 이 산은 기어이 올라가야 할 산이 아니라 기대거나 안겨야 할 산이란 말인가.

1시간 넘게 길이 나지 않은 곳을, 길을 내며 헤맸다. 행불(行不)의 미아가 된지 2시간. 길을 잃은 두 명의 산객이 드디어 인가(人家)를 만나 광명을 찾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가 헤맸던 그 협곡에서 지난 4월 할아버지 한 분이 행방불명 됐다고한다. 으악~. 산길을 내려오며 소름이 돋던 한기(寒氣)가 그냥 돋친 게 아닌 듯싶었다.

결국 보만식계 종주, '보'와 '계'를 빼고 '만식'이만 가겠다는 생각도 끝내 이루지 못했다. 종주란 이런 것이다. ‘오기’만 가지고는 절대 산을 이길 수 없다.

대전(만인산)=나재필 기자 najepil@cctoday.co.kr

 

   
계족산성


◆보만식계 도상거리(대략 58㎞)

보문오거리~1.3㎞~보문산~2.6㎞~구완터널~0.3㎞~오도산~2.2㎞~376봉~1.5㎞~도래말고개~2.8㎞~떡갈봉~2.2㎞~372봉~2.4㎞~안산~0.5㎞~먹치고개~1.4㎞~만인산~1.2㎞~추부터널~1.2㎞~정기봉~2.3㎞~골냄이고개~0.9㎞~541.4봉~1.2㎞~마달령~0.8㎞~410봉~3㎞~닭재~1.4㎞~망덕봉~0.8㎞~곤룡재~1.6㎞~동오리고개~2.1㎞~식장산~3.8㎞~세천육교~1㎞~줄골마을~2㎞~314.7봉~1.3㎞~길치터널~2.2㎞~362봉~0.6㎞~절고개~1.5㎞~계족산~1.6㎞~회덕정수장 앞


 

   
 

☞내가 신고 다녔던 20년지기 등산화

내가 20년이나 신고 다녔던 등산화의 얼굴이 슬프다. 낡고 해져서 제 얼굴을 잃었다. 아니 제 모습을 잊었다. 이 등산화는 명품 메이커가 아니다. 등산 초심자였을 때 튼튼한 '놈'으로 샀는데 진짜 튼튼하기만 했지, 실용성과 착용감은 떨어졌다. 통풍, 충격흡수력, 접지력에 있어 요즘 나오는 고어텍스 첨단 등산화와는 잽이 안된다. 얼마나 무거운지 발목에 쇳덩어리를 찬 것처럼 걸음 떼기조차 힘들다. 그래도 고맙다. 지리산, 관악산, 도봉산, 치악산, 소백산, 태백산 등 난산(亂山)을 누비고 다녔지만 발목 한번 삐게 하지 않을 만큼 충직했다. 두 발의 길라잡이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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