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발 경기침체 우려로 증시가 엿새째 급락을 거듭한 가운데 사이드카가 발령된 9일 대전 중구 모 증권사 객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이 시세판을 응시하고 있다. 허만진 기자 hmj1985@cctoday.co.kr

“진작 환매했어야 했는데, 잠깐의 욕심때문에 이렇게 큰 손해를 볼 줄이야….”

최근 며칠간 한 증권사 지점의 객장에 매일 드나들고 있는 최모(68) 씨는 ‘파란 화살표’가 가득한 전광판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대기업에서 정년을 마친 최 씨는 수년전부터 주식에 재미를 붙여 퇴직금 일부를 투자하며 객장의 터줏대감이 됐다.

9일 오전 장내 직원의 “코스피 시장에 이틀 연속 사이드카가 발동됐다”라는 안내 멘트가 나오자 최 씨는 얼굴이 일그러지며 더 이상 말문을 열지 못했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 여파로 요동치고 있는 주식시장의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이날 오전 대전 모 증권사 A 지점을 찾았다.

최근 곤두박질치고 있는 국내 증시 상황에 객장에 있는 50여 명의 투자자들과 증권사 직원들은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새벽부터 이어진 폭우에 이날 하루 대전지역은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객장은 전광판을 주시하고 있는 투자자들로 가득찼다.

폭락장이라 주식거래는 줄었지만 팽팽한 긴장과 가중되는 스트레스로 객장 사람들의 몸과 마음은 이미 삭은 파김치가 되다시피 했다. 대다수의 투자자들은 시장이 바닥을 찍었는 지의 여부나, 우량주를 중심으로한 주식, 금 등의 실물자산 투자법 등을 직원들에게 문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투자자들의 한탄을 들으며 입사 이후 가장 혹독한 시련기를 보내고 있는 최 주임 또한 얼굴색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 9일 코스피지수가 전날 1869.45보다 68.10포인트(3.64%) 하락한 1801.35포인트에 마감했다.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관계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통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 주임은 “눈만 뜨면 주가가 폭락하니 돈을 맡긴 고객들을 볼 낯이 없어 한숨만 나온다”며 “올해는 진급도 해야 하는데 영업 실적 또한 지난해의 30~40% 수준으로 줄어 스트레스만 늘고 있다”고 넋두리를 늘어 놓았다.

바로 옆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 역시 신경이 날카롭기는 마찬가지다.

한 차장 역시 “요즘 주식매매는 평소보다 크게 줄었지만 증시의 변동성이 워낙 커 장중엔 모니터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다”며 “작은 실수도 큰 손실을 입거나 큰 이익을 놓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말문을 끊었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한탄을 늘어 놓고 있는 가운데서도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투자자도 눈에 띄었다.

투자자 김모(66) 씨는 “시간이 약이다. 주식투자하며 이런 상황 한 두번 겪냐”라며 같이 객장을 찾은 동료를 안심시키는 여유를 내비쳤다.

손해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김 씨는 “물론 나도 손해를 봤지만 이럴 때 더 넣어야 (투자가) 되는 것”이라며 “신문이나 방송에서 연일 심각하게 보도하고 있지만 나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남다른 자신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투자자들의 표정처럼 지역 증권가에는 그 어느때보다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이날 코스피지수 종가는 전날보다 68.10포인트(3.64%) 내린 1801.35로 장을 마감했고, 코스닥 또한 전날보다 29.81포인트(6.44%) 내린 432.88로 마쳤다.

이틀 연속 국내 주식시장에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주가지수가 전일대비 10% 이상 하락한 상태가 1분 이상 지속될 경우 모든 거래를 20분간 중단하고, 이후 10분간은 새로 호가를 접수해 단일가격으로 처리하는 것)가 발동되는 등 주가 폭락장에서나 볼 수 있는 각종 진기록이 쏟아진 하루였다.

이호창 기자 hclee@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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