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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3시. 잠이 덜 깬 미명(未明)의 시간과 마주쳤다. 모두들 잠든 밤에 행장을 꾸리고 가족과 이별하는 것은 설렘을 떠나 여행자의 발길을 저벅거리게 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듣도 보도 못한 '비즈니스 에어'를 탔다. 당연히 KAL이나 아시아나 항공을 타리라 생각했었는데 기대는 여지없이 경착륙했다. '비즈니스 에어'는 태국의 저가항공사인데 외양을 보니 땜빵 흔적이 역력했고 내부는 비좁고 조악했다.
이륙하기 위해 날개를 펴자 밭은기침이 나오며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백인과 황인종 사이의 스튜어디스가 '사와티캅(안녕하세요)'이라며 미소로 인사했다. 그 웃음은 방콕 수완나품(옛 돈므앙 국제공항) 공항까지 가는 5시간 30분을 위무했다.
태국사람들은 방콕을 방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방콕의 이름은 태국어로 '끄룽텝 마하나컨 보원 랏따나꼬신 마힌따라 아유타야 마하딜록 뽑놉빠랏 랏차타니 부리롬 우돔랏차니우엣 마하싸탄 아몬삐만 아와딴싸티 싸카타띠띠야 위쓰누깜쁘라씻'이다.
무려 62자인데 '위대한 천사의 도시, 에메랄드 불상이 있는 곳, 침범할 수 없는 땅, 아홉 개의 고귀한 보석을 가진 세계의 웅대한 수도, 신이 사는 곳을 닮은 왕궁이 많이 있는 즐거운 도시, 인드라 신의 도시'라는 뜻이다. 방콕 차오프라야 강을 메우는 수상버스(르아두언), 수상배들의 행렬이 장관이다.
특히 거룻배가 클롱(운하)을 운행하며 식품과 잡화, 과일을 파는 수상시장 모습은 우리네 60·70년대 모습과 닮았다. 세계최대 황금색 티크 왕궁인 위만 멕과 에메랄드사원, 새벽사원 등도 볼만하다.
파타야(Pattaya)는 '별이 쏟아진다'라는 뜻의 이름으로 아시아 휴양지의 여왕으로 불린다. 낮에는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 오후 4시가 넘으면 나래를 펴는 '밤의 천국'이다. 특히 산호섬에서의 해수욕과 요트크루즈, 제트스키, 바나나보트, 씨워킹, 스피드보트에 연결된 낙하산을 타고 바다 위 공중을 나는 페러세일링은 파타야가 자랑하는 해양스포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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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오프라야강 새벽사원 앞을 달리는 수상배. |
◆“어메이징 타일랜드”
태국은 지하철 24㎞를 건설하는데 12년이 걸릴 만큼 중국보다 더 만만디(느림보)다. 1년 벼농사를 지으면 자국민이 18년을 먹고 살만큼 이모작, 삼모작이 가능한데도 놀리는 땅이 많다.
태국은 여행국가가 아니라 ‘어메이징(amazing) 관광국가’다. 체험형관광지가 많아 누구도 상상하지도 못할 일들이 수시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매춘을 합법화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섹스산업은 음지에서 나온 지 오래다. 세계 3대 쇼의 하나인 '알카자 쇼'는 트랜스젠더들이 춤을 추고 퍼포먼스를 하는 무대다. 트랜스젠더는 여자보다 더 예쁘고 섹시하다.
트랜스젠더의 시초는 타이와 미얀마(옛 버마)가 300년 전쟁(16세기~18세기)을 치르면서 생겨났다는 게 정설이다. 전쟁을 치르다보니 남자들이 귀했고 징집되지 않으려고 여장을 하거나, 여성처럼 자라다보니 성(性)의 혼돈이 생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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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랜스젠더들이 알카자쇼를 마치고 공연장 앞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여자보다도 더 여자 같아 소름이 돋았다. |
두 얼굴의 양면성을 보이기도 한다. 코끼리를 신성시하면서도 농눅 빌리지에서 만난 코끼리는 ‘애완동물’이 돼 축구·농구, 훌라후프와 볼링을 하는 처량한 신세였다.(농눅 빌리지는 정원사만 3500명인 거대한 식물원으로 열대식물, 난(蘭), 선인장 등 진기한 식물들로 가득하다) 악어를 사랑한다고 표방하는 타이거 동물원도 악어쇼를 해서 돈을 벌고 나중엔 고기와 가죽까지 팔아 부(富)를 챙기고 있다.
돈이 권력이기에 마피아가 정치인이 되고 365일 술판을 벌이면서도 총선 전후 이틀 동안은 음주를 금지하고 있다. 이 날은 술집 모두가 문을 닫고 마켓에서도 술을 절대 팔지 않는다.
산호섬도 분명히 태국 땅인데 한국어가 대세다. 보따리장수들이 물건을 팔 때는 "싸요~ 싸요"를 외친다. 옥수수를 팔 때는 강원도 찰옥수수라고 하고 가오리 지갑을 팔 때도 '아싸가오리'를 외친다.
남자들도 20세가 되면 국방의 의무를 져야하는데 어이없게도 제비뽑기로 결정한다. 제비뽑기로 빨간색이 나오면 3년간 군 생활을 해야 하고 파란색이 나오면 면제다. 18세 되는 남자들은 6개월간 의무적으로 스님생활도 한다. 방콕에서는 세발자동차 '뚝뚝이'가 택시 역할을 하고 파타야에서는 군용 지프를 개조해서 만든 트럭 '쏭테우'가 택시 대용이다.
◆"컵쿤캅 타일랜드"
고깃배가 떠다니던 한가로운 어촌 마을에서 일약 세계적인 관광 유흥지로 떠오른 파타야. 낮에는 해양스포츠로 태양을 즐기고 밤이면 파타야 비치에 빼곡히 들어선 바(Bar)에서 맥주 한 잔으로 밤의 열기를 식힌다. 파타야 비치는 흰 모래밭과 야자나무, 선베드, 고급 방갈로가 남북으로 4㎞ 넘게 줄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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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눅 빌리지 코끼리들의 묘기(좌), 세계최대 황급색 티크 왕궁인 위만 멕. |
열대몬순 밀림의 노곤함을 달래는 스파(SPA) 패키지는 단연 베스트셀러. 특히 우기(5월~10월)때 받는 정통마사지와 스파, 발마사지는 온몸의 근육과 관절을 분해하는 듯 시원하다. 안마사의 손과 팔꿈치 힘이 경락의 정곡을 찌르며 피를 돌게 한다. 발가락부터 머리끝까지 3시간가량 지압한다.
태국은 맛과 향의 국가이기도 하다. 닭, 두부, 새우, 파, 양배추, 옥수수, 만두, 삼겹살 등을 소스에 찍어먹는 수끼(샤브샤브), 꽃게를 통째로 튀겨 양념소스로 버무린 풋팟픽끄아, 태국식 볶음쌀국수인 팟타이는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메뉴다. 태국향이 짙은 똠양꿍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메뉴는 향이 독하지 않으며 소스나 베이스도 한국의 젓갈을 뛰어넘지 않는다.
파타야는 도시 자체가 벌거벗는다. 굳이 감추지 않는다. 드러내놓고 즐기라고 한다. 너무나 대담해 오히려 얼굴이 뜨거워지기도 하지만 그 솔직함이 결국 음지로 숨어드는 음습한 생각들을 양지로 끌어낸다. 때문에 차타고 돌아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가급적 지근거리에서 이동하며 체험하고 즐기는 곳이다.
‘태국은 발목 잡는 나라’라는 말이 있다. 90일 정도 머물다보면 그 매력에 푹 빠져 정착하거나 주저앉게 되기 때문이란다. 그 만큼 매혹적이라는 얘기일터. 떠나온 타일랜드의 로즈마리향이 벌써 그리워진다. "컵쿤캅(감사합니다) 타일랜드."
태국(파타야·방콕)=나재필 기자 najepil@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