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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작살비가 쏟아졌다. 전날 밤 기상 캐스터가 비에 흠뻑 젖은 듯한 목소리로 일기예보를 할 때부터 눈치는 챘었다. 그냥 비가 아니라 폭우라는 것을. 거기다가 태풍 '메아리(MEARI)'까지 북상하며 겁을 주고 있었다. 오늘 여정으로 택한 숲과 수목원 사이에 저기압이 끼기 전에 행장을 서둘러야 했다. 적어도 태풍 ‘메아리’가 시속 60㎞로 북북서진 중이니 종종걸음을 치면 태풍보다 먼저 남남서진의 여정을 끝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조바심 끝에 찾아간 ‘한밭수목원’은 스콜 기운에 휩싸여있었고 여행자의 마음은 이내 장마전선에 갇히고 말았다.
◆비가 곧 여행이다
흔히들 비 오는 주말엔 나들이를 하지 않는다. 우중충하고 구질구질해서 차라리 '안식'을 갖는 것이다. 하지만 먼 곳만 보지 말고 가까운 곳으로 눈을 돌려보라. 우중(雨中)산책 삼아 공원이나 수목원을 찾는 것도 별짜다. 더구나 비오는 날의 산책은 화창한 날보다 감각세포가 더 열려 통점·냉점·온점이 살아난다. 비가 뚝뚝 떨어지는 것만 봐도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시원(始原)의 눈물샘을 보면 온몸의 문이 열린다. 메말라버린 몸속의 강물. 그 강둑을 막고 서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번개와 낙뢰가 떨어지지 않는다면 비오는 날, 꽃과 나무를 보는 것은 호사다. 섬세하게 하늘거리는 꽃, 그 꽃잎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마음에 호우주의보를 내린다. 이를 ‘비오는 날의 죽비’라고 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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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좌), 비비추 |
◆비에 젖은 한밭수목원
'대전의 센트럴파크'라 불리는 한밭수목원(대전시 서구 만년동)은 정부대전청사와 과학공원 녹지축을 잇는 전국 최대의 도심 속 인공수목원이다. 도심에 이처럼 거대한 '식생의 보고'가 있다는 것은 시민의 행복이자 축복이다. 총 조성면적은 38만7000㎡로 동원, 서원, 남문광장으로 이루어져있다.
동원(東園·평송수련원 북측)은 목련원, 약용식물원, 암석원, 유실수원 등 19개의 테마별 정원으로 구성돼있는데 1415종 13만본의 식물이 자란다. 입구에 들어서면 반송, 쉬땅나무, 남천(매자나무과), 꽝꽝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비에 젖은 나무를 보자 개안(開眼)이 된다. 우듬지 사이로 비와 바람이 스치니 ‘하늘의 나무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득한 곳으로부터 아주 가까운 곳으로 소리는 전율한다.
장미원에는 누구나 이 꽃을 좋아한다고 해서 낙양화(洛陽花)라고 불리는 술패랭이, 꽃도 이쁘고 향도 좋은데 너무 빨리 져버려서 약간은 색이 바랜 꽃치자, 노루오줌, 눈빛개승마가 피어있다.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에 이파리가 가늘게 몸을 떤다. 꽃들은 아직 만개하지 않아 제 모습을 모두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흐린 날대로 정원은 웃고 찡그리고 얼굴색을 바꾼다. 여자들의 화장보다도 유난스럽고 별난 변주다. 붉은 꽃이 귀여운 버베나는 손가락에 물들인 봉숭아를 연상시킨다. 뱀무, 당귀, 둥글레도 있고 큰꽃달장이꽃, 로벨리아딥로즈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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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스타데이지(좌), 달맞이꽃. |
특히 로즈마리와 박하(작은 깻잎 모양)는 손으로 잎을 조금만 문질러도 멀미가 날 정도의 짙은 향기를 뿜는다. 톱풀, 마타리, 백리향, 벌개미취, 붉은마삭줄, 이끼용담, 바위솔, 붓꽃, 개방풍, 각시원추리, 만년청, 송엽국, 무늬버들, 노랑줄무늬비비추, 꽃창포는 분재로 피어있다. 꽃잎에 빗방울이 닿고, 그 빗방울이 땅으로 낙화하니 마치 '한 송이의 눈물'이다.
장미원을 지나 향기원에 들어서면 꽃의 외양을 보기도 전에 향기에 반한다. 여기저기 비에 젖은 나비가 날아다닌다. 계절을 잊은 잠자리도 꽃 잔등이에 앉아있다. 날개가 젖어 몸이 둔하지만 그래도 힘차게 난다.(청춘이 그러하듯이). 물기를 털듯 트위스트도 춘다. 상록수원에는 감탕나무, 상록성 참나무들이 자란다. 특히 빗소리와 댓잎소리가 맞닿아 절묘한 교향악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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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비오는 날에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비가(悲歌)다. 실유카. 나재필 기자 |
남문광장 서쪽에 있는 서원(西園)은 나무숲이다. 무궁화원, 관목원, 물오리나무숲, 굴참나무숲, 감각정원, 졸참나무숲, 침엽수원, 명상의 숲에서 972종 71만 8000본의 식물이 자란다. 동원은 천연기념물센터, 평송청소년문화센터, 서원은 예술의전당, 시립미술관, 이응노미술관이 맞닿아있어 문화공간의 메카이기도하다. 한밭수목원 관람시간은 6월부터 9월까지는 오전 6시~오후9시,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는 오전 6시~오후 6시다. 평일 오전 10시, 오후 3시와 주말·공휴일 오전 10시, 오후 2시, 오후 4시엔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할 수 있다. 입장료는 무료. 042-472-4972~4. 한편 시는 엑스포 시민광장 내 '움직이는 그늘막'으로 불리는 5층 높이의 무빙쉘터 3개동을 준공했다.
한밭수목원(대전)=나재필 기자 najepil@cctoday.co.kr
대전 녹색쉼터 오월드·유림공원·갑천호수공원
△오월드=대전시 중구 사정동 일원 68만㎡ 규모의 오월드는 서울대공원, 에버랜드에 이어 전국 세 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종합테마공원. 130종 600여마리가 사는 동물원에는 늑대사파리, 초식동물 사파리가 있다. 플라워랜드에선 나무 15만그루, 초화류 20만본을 구경할 수 있다.
△갑천호수공원=1993년 대전엑스포 이후 갑천은 대전시민이 가장 즐겨 찾는 명소다. 엑스포다리는 우아한 곡선 아치와 환상적인 경관조명이 장관이다. 다리 난간의 스윙시스템 분수, 물터널 분수가 화려한 조명과 어우러져 눈길을 사로잡는다.
△유림공원=갑천과 유성천 사이 5만8000㎡ 부지를 시민의 숲으로 탈바꿈시켰다. 명품 소나무, 꽃이 피는 느티나무인 팽나무, 강릉의 오죽, 천연기념물인 망개나무 등 전국에서 모은 7만그루의 나무들이 총집합해 있다.
△장태산 자연휴양림=울창한 메타세콰이어 숲이 일품인 휴양림. 하늘로 쭉쭉 뻗은 메타세콰이어 숲이 선사하는 이국적 경관과 피톤치드가 가득한 숲에서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