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사랑한 도담삼봉은 장군봉(남편봉)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첩봉(딸봉)과 오른쪽으로 얌전하게 돌아앉은 처봉(아들봉)이 물 위에 솟아있다.  
 

충북 제천과 단양은 차로 20분 거리지만 예전엔 40분 넘게 걸렸다. 지금은 이웃사촌처럼 동네의 경계를 없애고 형제처럼 지낸다. 이 두 동네는 경상도와 강원도를 접경으로 한 특이한 성상을 갖고 있다. 말투는 강원도요, 생활권은 충청도다. 조선시대 충청감사인 정인지는 제천을 두고 '가는 곳마다 물이 넘치고 청산의 위엄이 준엄한 천부의 고을'이라고 했다. 단양(丹陽)은 연단조양(鍊丹調陽)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신선이 다스리는 빛 좋은 고을'이라는 얘기다. 소백산 자락과 남한강이 만나는 선경이기 느껴지는 까닭이다. 제천과 단양을 1박2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유년의 추억을 찾아서

차창 밖으로 동량~삼탄~공전을 잇는 충북선 기찻길이 보인다. 영화 '박하사탕'의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곳이다. 귓전에 설경구가 외치던 '나 돌아갈래' 절규가 들려오는 듯하다. '울고 넘는 박달재'로 유명한 박달령(朴達嶺)은 이제 긴 터널이 생겨 역사의 퇴행길에 올랐다. 38번 국도를 이탈해 구불구불 산길을 올라야 그 옛날 박달 도령과 금봉이의 순정을 느낄 수 있다. 다릿재를 조금 지나 옛길로 들어서는 길이 있다. 박달령을 넘으면 원박리가 나타나고 제천 초입(봉양)에 들어선다.

제천은 사통팔달 교통의 도시로 불린다. 중앙선(청량리~경주)과 충북선(조치원~제천), 태백선(제천~태백) 열차의 시발역이자 종착역이다. 실핏줄처럼 국도가 지나가고, 중앙고속도로(춘천~대구)도 관통한다. 강원도(원주·영월)로 가든 경상도(풍기·영주)로 가든 반드시 제천을 거쳐야한다. 드나듦이 많아서인지 예전에는 뜨내기와 건달들이 많아 제천에서 주먹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이유가 뭘까. (확인된 바는 아니지만) 날씨와 성정, 의협심 때문이다. 제천은 강원도와 경북의 접경지다. 충청도라기보다는 '강원남도'라 불릴 만큼 말투와 억양이 거칠고 강파르다. 또한 분지(盆地)이기 때문에 여름과 겨울이 유난히 길다. 아무리 꽁꽁 싸매도 옷섶에 들어오는 동장군을 막아낼 재간이 없다. 어릴 적 기억으로는 영하 30도는 겨울 축에도 못 들었다. '남한의 중강진'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또한 제천은 을미의병(義兵)의 진원지로 의원(義原), 의천(義泉)이란 별칭을 갖고 있을 만큼 의(義)를 숭상하는 도시다.
 

   
▲ 청풍문화재단지 내에 있는 보물 528호인 한벽루.

◆사라진 슬픈 흔적들

우리나라 최고(最古) 수리시설인 의림지에 들렀다. 제천의 학생들은 대부분 10경중 1경인 의림지로 소풍을 간다. 가장 호젓한 솔숲이기 때문이다. 환타와 계란 세 개, 김밥 한 줄이면 너무나 행복했던 소풍길이다. 오리배를 탔다. 동행한 정진영 기자와 이형규 기자가 페달을 밟고 한량은 풍경을 관조했다. 이들의 발놀림이 마치 물밑에서 한없이 바쁜 '오리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림지는 겨울철과 해빙기에 잡히는 공어(빙어)의 원산지로도 유명하다. 동행한 기자들의 양해를 구해 잠시 그 옛날 살던 외딴집에 들렀다. 등잔불에 타던 추억의 장소, 그 변모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개미네 집같이 노란 등불아래서 가족들이 함께 소곤거리며 식사를 하던 곳이다. 그러나 수풀로 우거진 집은 폐허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장작더미가 무수히 들어가던 ‘토굴’ 같던 아궁이는 기력을 잃고 쇠잔하다. 그 아궁이에 솥을 데우고 그 물로 머리를 감던 그 따뜻한 통로가 사라진 것이다. 텃밭도, 장독대도 없어졌으니 유년의 추억, 청년의 기억도 아스라하다. 사련(邪戀)이 탄다.

◆단양, 그 맑음에 대하여

단양팔경 중 1경인 도담삼봉(島潭三峯)은 제천에서 단양으로 가는 길 끄트머리에 있다. 장군봉(남편봉)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첩봉(딸봉)과 오른쪽으로 얌전하게 돌아앉은 처봉(아들봉)이 물 위에 솟아있다. 조선 개국공신인 정도전은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할 만큼 젊은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단양의 명소로는 도담삼봉 외에도 석문(2경), 구담봉(3경), 옥순봉(4경), 사인암(5경), 하선암(6경), 중선암(7경), 상선암(8경)이 있다. 단양군은 야경8경도 빼어난데 도담삼봉을 비롯, 고수대교·상진대교·양백폭포·양백산 전망대·수변무대·장미터널·단양관문이 빛을 뿜는다. 모두 단양읍을 항아리처럼 둘러싼 남한강 주변에 있어 한눈에 둘러보기 쉽다. 특히 양백산 전망대에 오르면 남한강 너머 단양읍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고수대교에서 성인남자 걸음으로 90분쯤 걸리고 자동차로도 갈 수 있다.

◆다시 청풍명월에 빠지다

내륙의 바다 청풍호는 명경처럼 푸른 산을 그대로 반사해낸다. 데칼코마니처럼 정확하게 찍힌 물 위의 수묵화가 몽환적이다. 푸른 먹의 농담(濃淡)이 그야말로 청풍명월(淸風明月)이다. 호수는 면적 67.5㎢으로 육지 속 바다라는 명성에 걸맞다. 둘레를 도는 82번국도 드라이브 코스는 1시간이 넘게 걸린다. 댐이 충주에 있어 충주호라 이름 붙었지만 청풍면 29개 리(里) 중 27곳이 잠겼을 만큼 수몰지역은 제천 땅이 더 많다. 호수가 차지하는 면적도 제천이 더 많아 제천사람들은 '청풍호'라고 부른다. 매년 8월이면 청풍호반을 중심으로 음악과 영화를 결합시킨 아시아 최대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연다. 물에 잠긴 청풍의 영화는 청풍문화재단지에 남아있다. 청풍면이 물에 잠기면서 일대에 있던 수많은 유물들을 산동네로 옮겨 청풍문화재단지를 만들었다. 보물 2점, 지방유형문화재 9점, 생활유물 20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주변에 KBS·SBS드라마 세트장, 영화 촬영장도 볼만하다.

   
▲ 정진영 기자가 청풍랜드 번지점프대(높이 62m)에서 한마리 새가 되어 낙하하고 있다.
◆번지점프를 보다

제천시 청풍면 교리에 있는 청풍랜드 번지점프장. 이곳은 높이 62m로 국내 최고이며 점프대에 섰을 때 아래로 호수가 보여 체감높이는 100m를 넘는다. 체험료는 4만원. 좀 비싸기도 하지만 담력이 없는 사람은 그 아득한 높이에 그냥 주저앉고 만다. 체험은 정진영 기자가 자청했다. 그는 남태평양 바누아투의 펜테코스트 원주민처럼 긴 줄을 다리에 묶었다. 칡의 일종인 '번지'라는 열대덩굴이 아닌 로프를 달았다. 그는 왜 가벼운 새가 되고 싶었을까. (성인통과의식을 치르는 원주민도 아닐진대!) 아득한 높이에서 아슬아슬하게 허공을 밟고 있는 그를 보며 되레 내 몸이 바람처럼 흔들렸다. 그가 뛰어내렸다. 거꾸로 떨어지는 모습이 십자가와 닮아있었다.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리꽂는 낙화(落花), 눈발처럼 휘날렸다. 그는 시지프스의 고통처럼 울부짖고 있었으나 자세히 보니 웃고 있었다.(독한 녀석!)

글·사진=나재필 기자 najepil@cctoday.co.kr

제천=이대현 기자 lgija2000@cctoday.co.kr

단양=이상복 기자 cho2225@cctoday.co.kr

Posted by 충투 기자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