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은 첫눈에 제짝임을 알아봤다. 베트남에서 태어난 띠엔 씨와 친구를 따라간 유재삼 씨는 성공적인 국제결혼과 동시에 행복한 다문화 가정의 표상이 되고 있다. 부부가 아들 대선(5)이와 딸 은정(3)이를 사이에 두고 가족앨범을 보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천안=유창림 기자  
 

"이제 우리나라의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은 허물어질 것입니다. 국적에 상관없이 외국인들을 우리 이웃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외국인지원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박미숙(52) 천안시 여성가족과장의 말이다.

천안시 거주 외국인은 2000년 이후 급속도로 증가했다. 2000년 3717명에 불과했던 외국인은 2003년 6213명, 2007년 8786명, 2008년 9964명으로 증가했고, 2009년 1만 명을 돌파, 1만 586명을 기록했다.2011년 2월말 기준으로 천안시 인구는 57만 2881명이며, 이중 2.2%에 해당하는 1만 2523명이 외국인이다. 50명에 1명꼴이 우리와는 피부색과 언어, 문화가 다른 사람들로 더 이상 외국인은 낯선 존재가 아니다.

더욱이 이들 중 상당수는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국민의 일원이며, 우리 이웃이다.

바로 다문화가정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 다문화가정 정책이 본격 추진되면서 181가구에 불과했던 천안시 다문화가정은 2007년 322가구, 2008년 373가구로 서서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후 다문화가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면서 2009년에는 1780가구로 폭발적 증가를 보였고, 2010년 6월 현재 1813가구로 증가세는 유지되고 있다.

특히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2세들이 사회로 진출하는 시점이 되면 다문화가정이라는 표현 자체가 구닥다리로 전락할지도 모를 일이다.

문제는 다문화가정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모두가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외국인 아내를 폭행하고, 살해하는 일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실제 지난달 23일에 제주도에서는 외국인 아내와 말이 통하지 않는데 불만을 품은 40대 남성이 아내와 다투고, 집안에 불을 붙인 혐의(방화)로 입건됐다.

이에 앞서 지난 3월 강원도 춘천에서는 12억 원대의 보험금을 노리고 화재사고로 위장해 외국인 아내를 살해한 4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와는 반대로 한국인 남성이 결혼업체를 상대로 외국인 아내에게 속아서 결혼을 했다며, 환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업계에 따르면 돈을 벌 목적으로 한국인 남성과 결혼을 하고, 국적 취득 후 가출을 해서 취업을 하는 경우로 이들을 가정에 복귀시키더라도 결혼 생활이 유지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이와 같은 사회적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 본지는 행복한 가정을 영위하고 있는 다문화가정을 찾아 그들의 성공 비결을 조명해봤다.

◆풀하우스에 끌려 한국에 시집온 19살 베트남 아가씨의 천안 생활

송혜교와 비가 출연해 국내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풀하우스.

2004년 국내에 방영된 풀하우스는 한류 열풍을 타고 베트남에 상륙, 베트남 여심을 사로잡았다.

당시 19살 베트남 아가씨 띠엔(24)도 이 드라마에 푹 빠져 막연히 한국을 동경했고, 한국 남자와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띠엔은 곧바로 자신의 바람을 실천에 옮겼다. 결혼업체를 통해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한국어 공부 3개월 만에 업체의 알선으로 2006년 3월 지금의 남편 유재삼(39) 씨를 만나게 됐다.

띠엔과 유재삼 씨의 만남은 조금은 특별하다.

결혼을 위해 베트남에 가겠다는 친구의 권유로 관광차 따라나섰던 재삼 씨는 맞선장소에 동행했고, 이 자리에서 띠엔을 만났던 것.

"띠엔을 보고, 첫 눈에 반했어요. 친구를 따라나서면서 '혹시'하는 기대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정말 결혼을 할 거라는 건 꿈에도 생각 못했거든요."

띠엔 역시 첫눈에 지금의 남편이 눈에 들어왔고, 짧은 만남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키울 수 있었다.

띠엔과 재삼 씨는 베트남 현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친인척에게 인사를 올리며 바쁜 일정으로 소화했다.

이들이 사랑을 키워가고 있는 사이 한국에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재삼 씨의 어머니 서정애 씨다.

"아들이 결혼에 좀처럼 관심이 없었는데 친구가 결혼하러 간다고 해서 구경 간다며, 떠나더니 느닷없이 결혼하게 됐다며 전화가 걸려왔어요. 외아들인데, 말도 안통하고, 어떻게 살려고 하는지 많은 생각이 들었지요."

그러나 시어머니는 걱정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띠엔 씨가 입국한 건 결혼 후 3개월이 지난 2006년 6월 10일.

서정애 씨는 주변에 조언을 구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언어임을 깨닫고, 띠엔 씨를 상명대학교 한글교실로 이끌었다.

그리고 버스 타는 법과 각종 공공시설 이용방법 등 며느리가 혼자서도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모든 것을 손수 가르쳤다.

"학교에는 이틀 데려다 줬어요. 버스 타는 법을 가르쳐주며, 혼자 할 수 있도록 했어요. 며느리가 두려워할 것도 알고 있었지만 혼자 하는 법을 빨리 터득해야만 평범한 가정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엄마(시어머니에 대한 띠엔의 호칭) 손을 잡고, 한글교실에 갔을 때는 정말 무서웠어요. 수강생 중에는 베트남 사람이 한명도 없어서 더 힘들었고요. 특히 수업이 끝나고 혼자 버스를 타던 그 날은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정말 불안했고, 집에 와서 남편 얼굴을 보니 눈물이 핑 돌았지요."

그렇게 시작된 띠엔의 한국 생활은 놀라운 성과를 보였고, 마침내 2009년에는 최초의 천안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베트남어 통역사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띠엔은 현재 매주 월~금요일 천안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출근하며, 베트남 이주 여성들의 통역 업무를 맡고 있다.

통역 업무를 맡다보니 자연스레 베트남 이주 여성들의 고민을 듣게 된다.

언어장벽으로 인한 갈등과 오해, 그로 인한 부부간의 불신과 파경 등.

띠엔은 “이들의 사연을 한국말로 옮길 때마다 엄마의 깊은 뜻을 세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두 아이의 엄마 새로운 고민의 시작

띠엔이 아내로, 며느리로, 또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정착하는 사이 새로운 호칭을 얻게 됐다. 바로 두 아이의 엄마다.

아들 대선(5)이와 딸 은정(3)이가 태어난 것.

주말이면 남편의 손을 잡고,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떠나며,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띠엔.

행복지수 100%인 띠엔에게 요즘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통역사로 활동할 정도로 의사소통에는 지장이 없지만 모국어가 아닌 이상 완벽한 발음을 할 수 없는 게 현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고, 학교에 진학하면서 한국 엄마와 다른 띠엔을 발견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충격을 생각하면 불안감이 엄습한다.

한국인 엄마처럼 똑같이 할 수 없는 자신들의 엄마를 아이들이 이해해 줄지는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또 엄마의 나라 베트남의 언어와 문화에 대해서도 아이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욕심이 불안감과 충돌하고 있다.

"대선이가 4살 때 친정엘 데리고 갔었어요. 엄마의 나라를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그 후로 베트남말을 가르쳐주고 싶어서 테이프를 들려줬는데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지금도 베트남말로 말하면 알아듣기는 하는데 말을 하지는 못해요. 그 부분이 좀 섭섭하기도 하지요."

띠엔은 흥타령축제에서 베트남 참가 팀의 춤 경연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먼 미래에 아이들이 베트남 전통 춤을 보고 '엄마 우리 춤 멋있지' 하며, 자랑스러워했으면…."

◆남편 재삼 씨가 전하는 국제결혼 성공 비결

"둘과의 관계만을 놓고 봤을 때 국제결혼이 일반결혼과 크게 다를 건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서로를 의지하는 감정이 더 크다는 장점이 좋은 쪽으로 작용할 수 있죠. 문제는 주변의 협조에요. 국제결혼을 한 사람들끼리 가끔 모이는 데, 그 곳에서 얘기를 해보면 부모는 물론 친지 분들이 외국 여성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직도 단일민족 또는 유교사상이 남아있기 때문이겠지요. 결혼 전에 주변친지를 설득하는 일은 빼놓지 말아야 합니다. 또 남자는 외국인 아내 위에 군림하려고 하면 안돼요. 아무래도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라 그런 의식이 저변에 깔리기 마련인데, 존중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또 한 가지 처갓집에 갈 계획을 세우고, 꼭 지켜주세요. 그건 아내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5년의 결혼 생활동안 3번 다녀왔는데 그때마나 아내가 크게 기뻐하더군요. 처갓집에 갈 때는 선물 잊지 마시고요. 고가의 선물보다는 우리나라에 흔히 있는 생필품이면 크게 대우 받습니다. 무엇보다 언어가 결혼생활 성공 열쇠의 기본인데요. 아내에게 한국말만 강요하지 말고 그 나라 말을 배워보길 권해봅니다. 저도 베트남 언어를 배우기 위해 테이프도 들어보고 하는데 쉽지는 않지만 꼭 장인, 장모와 베트남 말로 전화통화를 성공하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천안=유창림 기자 yoo772001@cctoday.co.kr

Posted by 충투 기자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