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3일 불온한 작당모의가 시작됐다. 우희철 온라인뉴스부장(당시 사진영상부장), 나재필 논설위원(당시 편집부 차장), 정진영 기자(편집부)가 머리를 맞대고 트래블(여행)면을 개혁하자고 결의한 것이다. 일부이긴 하나, 여타 신문들이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앉아서 여행 기사를 쓴다는 것을 알기에 조용한 울림이 되고 싶었다. 그 발칙한 결의는 즉시 행동에 옮겨졌고 1년 1개월 동안 60여 편에 가까운 현장체험 여행기사가 쏟아졌다. '미각의 달인' 이형규 기자는 항상 동행 취재를 하며 맛집을 발굴했다. 트래블에 동원된 기자는 연인원 100여 명에 가깝다. 쉬는 날(금요일)을 이용해 땀을 흘리며 뛰었던 400일간의 여행일기를 공개한다.

무엇을 보고 돌아왔다는 그런 이야기 말고, 여행길에서 뜻하지 않게 얻은 생의 단 한번뿐인 소중한 기억을 담고자 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통해 얻게 되는 소박하지만 진실한 삶의 본질 한 조각, 그것은 여행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 첫 번째 거사 날은 2010년 5월 15일. 정진영 기자가 1박2일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 그는 논산 지장정사에서 트위터로 인연을 맺은 네 명의 독자와 사찰체험을 했다.

무모한 도전은 5월 21일에 있었다. 나재필 논설위원과 정진영 기자가 '대충청방문의 해' 성공 기원 도보행진을 갖기로 한 것. 여기엔 강경미 기자도 합류했다. 대전 계룡로에서 청주 지북동(대략 45㎞)까지 무작정, 무조건 걷기로 했다. 얼마나 걸렸을까. 이 '고행 같은 여행'은 자그마치 12시간 14분이나 소요됐다. 우리는 맨발 아래 찌걱거리는 물집을 느끼며, 죽음만큼 고통스러운 통증을 참으며 대장정을 성공리에 마쳤다.

이에 버금가는 '옥천향수 100리길'은 자전거를 타고 장장 300리(120㎞)길을 달렸다. 무식의 발로였음을 자각한다.

계족산 야간산행(우희철·정진영)에서는 낙조를 머금은 도심의 휘황한 불빛을 보며 예고 없는 비박도 했다. 6·25전쟁 60주년 기념 지리산 산행이 이어졌고 '달님도 쉬어간다'는 '1박2일' 명소 영동 월류봉과 솔티마을은 두 번에 걸쳐 다녀왔다.

7월에는 정진영 기자 단독으로 대전서 대천항까지 시내버스로만 이동하는 '불편한 여행'을 감행했다. 승차비 1만 500원에 소요시간 2시간 20분. 차표 한 장 손에 쥐고 바다를 찾아 떠난 서대전~충남 광천 기차여행도 반향이 대단했고, 본사 28명의 기자들은 눈꽃열차를 타고 태백을 다녀오기도 했다.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종종 통음(痛飮)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을 버리고, 휴일을 버리니 마음까지 버려졌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술에 취한 것인지, 풍경에 취한 것인지 도통 몰라 지친 육신만 털어내곤 했다. ‘김삿갓’이 따로 없었다. 행색이 추비한데다 잠깐 잠깐 주저앉아 라면으로 끼니 삼으니 누가 보면 상거지라고 해도 부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바빴고 그만큼 열애했다. 팀원들 누구나 프로페셔널의 진정성을 가지고 있어 대강대강 일하지 않았다. 사진영상부장은 특별한 피사체 결상을 위해 활공으로 찍고, 팀원들은 직접 걸으며 텍스트의 고달픈 안착을 시도했다.

특히 옛길 탐사처럼 걷기가 많았는데 길 자체도 진흙탕이었지만 몸도 진창이었다. 취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가족과 웃어본 기억이 인자 속에서 소멸된 지 오래다. 지쳐쓰러져 잠을 잤고 다시 취재날의 동선을 꿈으로 기약했다.

충청·경상·전라도가 만나니 발끝서 구름이 웃는 영동 민주지산(1박2일). 김구선생이 걷던 공주 마곡사 솔바람길(올레). 길목마다 소소한 재미가 가득했던 괴산 산막이 옛길, 조선팔도 보부상·짐꾼들이 눈물과 땀으로 넘던 '차마고도' 문경새재, 온달·연개소문이 사랑한 월악산 '하늘재', 육지 속 섬마을인 금산 방우리, 90도 가까운 암릉을 기어오른 천태산, 마라토너 이봉주가 뜀박질했던 공주옛길(마티고개)을 걸었다.

여행의 출발은 항상 흥분과 떨림의 연속이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낯익은 풍광들은 마치 내 것이 아닌 타인의 것처럼 낯설었지만, 파도가 코앞에서 넘실대고 살짝 익은 바다 비린내가 코끝을 남실댈 때 행복했다. 포구에서 한 잔 걸치는 소주는 달았다. 길을 따라 여행하면서 겪는 삶은 고통스럽지만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고 사연을 만나니 피안(彼岸)이 따로 없었다.

신탄진·유성 장터에서 서민들의 흥겨운 흥정을 만났고, '하늘 아래 첫동네’인 청주 수암골, 또 다른 그림동네 대전 정뱅이마을, 마을 자체가 화폭인 홍성 거북이마을에서 사람과 사연을 만났다. 시간이 멈춰버린 장항 옛이야기는 마치 유년의 기억 한쪽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신라 원효대사가 극찬한 대둔산, 천수만 철새 탐조, 숫봉과 암봉의 연정이 쌓여 돌탑이 됐다는 전북 진안 마이산, 230만년 달려온 빛이 눈앞에 펼쳐지는 칠갑산 천문대, '조선시대'서 하루 묵어가는 논산 윤증고택, 속세의 덧없음을 일깨우는 불심의 죽비소리가 울렸던 부여 무량사도 만났다.

슬로시티 예산 2박3일, 속살온도 17도 단양 동굴여행, 축구장 150개 크기의 고랭지 배추밭이 있는 태백과 삼척의 환선굴. 단종의 슬픔을 간직한 영월 청령포, 망촛대가 버려진 들판을 덮었던 청원 옥화9경 물길의 얘기도 실었다. 금산 남이자연휴양림 캠핑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족 동반이었다.

객원 논객들의 참여도 있었다. 나인문 사회부장은 1300년 된 일본 최초의 수도 나라현에서 1400년 전 백제인의 혼과 숨결을 유익하게 담아주었다. 이종원 편집부국장, 이덕희·강경미·양승민·이형규·서희철·전민희 기자 등도 여행의 동행자로 종종 참여해 산경(山景)을 함께 즐겼다.

특집으로는 들녘서 ‘봄’을 찾는 빨주노초파남보 봄꽃여행, 여름특집으로는 피서지 충청 7선, 겨울엔 진천 백곡저수지에서 빙빙(氷氷) 도는 은빛세상을 낚았다. 봄보다 빨리 핀 매화를 보기 위해서 거제도로 달려갔고 '한국의 나폴리' 통영에서는 이순신의 ‘칼의 노래’를 들었다. 해외특집으로는 정 기자가 구쥬산과 벳부, 시모노세키를 경유한 3박4일 일본여행기를 담았다.

여행자의 안락은 생각 없이, 내키는 대로, 멋대로 굴러가는 것이다. 그 낭만이란 밤을 같이 보내는 것이 아니라 밤을 같이 지새는 것이다. 본 트래블 취재팀은 몸으로 때우고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썼다. 어디까지나 생생한 여행기를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함이었음을 고백한다.

나재필 논설위원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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