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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66년 맹호부대와 백두산 부대 소속으로 월남전에 파병된 참전용사 박응섭(67세. 왼쪽) 씨가 고엽제의 후유증으로 뇌경색과 전신마비로 대전보훈병원에 입원 간병사 장호숙 씨의 도움으로 치아를 부딪혀 대답을 하고 눈을 깜박거려 의사를 전달하고 있다. 정재훈기자 jprime@cctoday.co.kr | ||
“김영호 상병, 즐겁게 사시게.”
휠체어에 앉은 노병은 기억 속에 박제된 전우(戰友)에게 희미한 미소를 띠며 무던히도 윗니와 아랫니를 부딪쳤다.
2일 대전 보훈병원 요양병동 202호.
짧은 11음절의 말을 전달하기 위해 월남전 참전용사 박응섭(67) 씨는 간병사 장호숙 씨의 오른손 검지에 시선을 고정했다.
장 씨의 검지는 자음과 모음이 그려진 판을 분주히 오고갔다. 원하는 자·모음에 장 씨의 검지가 당도하자 일순간 박 씨는 치아를 부딪쳤다.
그들은 자·모음을 조합해 음절을 만들고, 음절을 조합해 단어를 완성했다.
박 씨는 경북 안동출생으로 지난 1966~1969년 맹호부대와 백두산 부대 소속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다.징집될 당시 그의 나이는 22세로 초등학교 교사 부임을 목전에 둔 상황이었다.
4년 간 조국을 위해 베트남의 밀림을 누빈 박 씨는 전역 후 안동과 대구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교편을 잡았다.
하지만 이내 전쟁의 그림자는 잔인하게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지난 2001년 고엽제의 후유증으로 뇌경색과 전신마비가 찾아왔다. 박 씨에 허락된 감각은 청력과 시력, 그리고 눈 깜빡임뿐이었다.
하지만 청천벽력과 같은 신체적 장애도 박 씨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박 씨는 보훈병원의 병실에서 지난 삶의 편린과 감정, 사람들의 기억들을 재생했다.
박 씨는 지난 10년 동안 간병사들의 도움을 받아 눈으로 글을 써내려갔다. 눈을 뜨고 다시 눈을 감기 전까지 하루에만 열 시간 이상 자·모음판과 치열한 싸움이 전개됐다.
자·모음과 받침을 조합해 음절을 만들고, 음절을 조합해 단어를 만들었다. 그리고 단어를 조합해 문장을 만들었다.
휴일과 명절에도 박 씨와 장 씨는 이 같은 작업을 계속했다. 하루가 지나면 공책 반쪽이 채워졌다.
또 눈 깜빡임만 가능했던 박 씨가 기적처럼 치아를 부딪칠 수 있게 됐다. 작업이 한결 수월해졌다.
10년 동안 계속된 문자와의 사투 속에 결과물이 완성됐다.
그렇게 세상에 속살을 드러낸 것이 박 씨의 책 ‘눈으로 쓴 편지’이다.
하지만 초판은 찍었지만 아쉽게도 시중에 판매되지 못하고 있다. 후원자가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박 씨는 자식들에게 “책을 출간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전했다. 박 씨는 이 말을 전하며 수차례 윗니와 아랫니를 부딪치며 겸연쩍게 웃었다.
그의 계면쩍은 웃음에는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간병사 장 씨는 “박 씨의 사고력과 기억력은 매우 뛰어나며 판단력과 심성이 밝고 맑기만 하다”면서 “눈 깜빡임 신호를 통해 쓴 글이 해를 지나니 책을 엮고도 남을 분량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인간의 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깨닫는 계기가 됐다”며 “역경은 희망과 의지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가슴으로 웅변해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씨는 또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은 사랑을 나눌 줄 알고 베풀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이다”라며 “나눔은 공동체의 삶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라고도 전했다.
아울러 “씨앗 한 톨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한 톨 그대로지만 썩어 새싹이 나오면 많은 이삭을 얻는다”며 보훈의 달 6월의 의미를 큰 울림으로 대변했다.
서희철 기자 seeker@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