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로봉 정상의 제1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내도리 일대의 풍경. 금강의 물굽이가 크게 감아 돌면서 만들어진 물방울 모양의 땅이 앞섬마을이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다리 건너편이 뒷섬마을이다. 나재필 기자 najepil@cctoday.co.kr  
 

육지 속 섬마을인 방우리는 충남 금산, 전북 무주가 만나는 곳에 방울모양처럼 매달려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행정구역은 충남이지만 금산으로 진입하는 도로가 없어 생활권은 무주다. 앞으로는 강이 가로막고 뒤로는 높은 산이 버티고 서 있으니 세상으로 통하는 길이 막혀있는 셈이다. 이런 지형 탓에 금산이면서 금산이 아니고, 금산이면서도 무주라 할 수 있다. 이곳에 당도했을 때의 첫 느낌은 전쟁이 나도 모를 만큼 오지 중 오지라는 거였다. 육지 속 외딴 섬, 충남 속 외딴 마을의 표정은 이방인에게 다소 수줍고 생경했다.

◆금산인가, 무주인가

방우리에 가려면 금산 쪽으로 통하는 길은 없고 전북 무주읍 내도리를 거쳐 빙 돌아가야 한다. 금산에서 무주를 거쳐 다시 금산으로 들어가는 격이다. 굳이 금산 쪽을 택한다면 금강과 적벽강을 도강해야한다. 험난한 여정(1시간 반)이다. 물론 무주 쪽도 마찬가지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고, 다시 산을 넘어야 숨어있는 동네를 만날 수 있다. 강가를 따라 비포장 길이 나타나고 10여분을 덜컹거리다보면 100m가 넘는 고개를 만난다. 차 한 대 지나갈만한 조붓한 소로를 굽이굽이 도는데 안세상과의 유일한 소통길이기에 주저할 수도 없다. 고갯길 절벽 위에서 굽어보는 풍광이 그림 같다. 벼랑 아래로 유유히 흘러가는 금강의 물줄기와 백사장이 말할 나위 없이 맑고 깨끗하다.

아슬아슬한 절벽지대를 지나치면 병풍처럼 강과 산이 동그랗게 감싸 안은 분지형태의 마을이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방우리다. 스물다섯 남짓한 가구가 사는 동네는 아담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하다. 한 바퀴를 돌아도 인기척이 들리지 않는다. 그 흔한 구멍가게조차 보이지 않는다. 별장 같은 집이 있기는 하나 문명의 모습이란 그 집이 끝이다. 여기저기서 쇠락한 시골마을의 잔뼈만이 삐걱거린다. 삿된 문명과의 이별이 그저 애처로울 뿐이다. 이 마을 사람들 이야기는 1963년 신영균과 최은희가 주연을 맡고 신상옥 감독이 연출한 영화 '쌀'의 토대가 됐다.

마을 오른편에 있는 방우리 습지(장자늪)는 멸종위기의 수달, 수리부엉이, 퉁사리, 쉬리 등 생태가치가 높은 동식물이 서식한다고 하는데 길손의 눈에는 그저 여염한 냇가로 보였다. 이곳은 국가습지보존사업단에서 후대가 보존해야 할 자연 습지로 선정됐다. 하류로 내려가면 수통리다. 이곳은 30m 높이의 병풍 같은 '적벽'이 산수화를 그려내듯 솟아있어 '대장금', '상도' 등 사극의 배경지가 됐다.(일행은 수통리는 가지 않았다)

 

   
▲ 전북 무주서 금산 방우리로 가는 조붓한 소로. 고갯길 절벽 위에서 굽어보는 풍광이 그림 같다.

◆앞섬인가 뒷섬인가

차를 타고 가면 도대체 앞섬이 어디고, 뒷섬이 어딘지 모른다. 다만 물줄기가 크게 굽이치는 곳이 무주 쪽 '앞섬'이란다. 뒷섬마을은 앞섬마을에서 또 한 번 물을 건너 들어가는 마을이다. 섬이 아님에도 앞뒤의 '섬마을'로 불리는 것은 마을 자체가 물과 산으로 꼭꼭 닫혀있기 때문이다. 다만 무주읍에서 먼저 닿는 곳이 앞섬, 뒤에 있는 곳이 뒷섬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결국 앞섬과 뒷섬은 '전(前)과 후(後)'가 아니라 '선(先)과 후(後)'다.

금강을 건너는 다리가 놓이기 전 앞섬마을은 배를 타지 않고는 건널 수 없었다고 한다. 십 수 년 전의 풍경이 그려진다. 콩 한 말을 팔려 해도, 간고등어 한 손을 사려 해도 나룻배를 이용해야만 나갈 수 있었을 것이고, 비라도 내릴라치면 강물이 불어 길은 수시로 끊겼을 것이다. 책가방을 메고 이 길을 걷던 까까머리 마을아이들은 볕에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거나 하릴없이 납작한 돌로 물수제비를 떴을 것이다. 금산이 아니라 무주로 학교를 다녀야했기에 바삐 걷지 않고 해찰하며 걸었을 것이다. 추억의 책가방이 길손을 적신다.

◆향로봉서 본 물돌이

물돌이를 잘 볼 수 있는 곳은 염재 말고도 향로봉(420m)이 있다. 향로봉에 오르려면 자그마한 절집 북고사를 거쳐야한다. 창건자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무학대사가 (무주의 지세를 보완하고자) 경월사라는 본래의 이름을 북고사로 바꿨다는 설화가 전해지므로 고려 말 이전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웃집 할머니 같은 비구니가 지키는 북고사를 지나면 소나무 빽빽한 숲길이 나타난다. 북고사에서 향로봉까지는 1㎞ 남짓. 숲길에 들면 사뭇 다른 정취가 느껴진다. 나무도 그다지 크지 않고 숲도 짙지 않지만, 새소리를 들으며 탄력 있는 흙길을 딛고 오르는 맛이 그만이다. 숲길을 조금 오르면 이내 갈림길이 나타난다. 오른쪽으로는 가파른 흙길이고, 왼편으로는 부드러운 숲길이다. 둘 다 향로봉에 이르는 길이지만, 왼쪽의 오붓한 숲길이 훨씬 더 운치 있다. 숲으로 드는 두 뼘 남짓 넓이의 오솔길은 구불구불하되 순하다. 솔바람 소리가 청아하다. 왜 '쏴아~'하고 파도소리가 나는지 모르겠다. 이 길을 걷다가 다시 갈림길이 나오면 향로봉 정상 표지판을 따라 조금만 더 가면 전망대에 이른다.

전망대에 서면 창암절벽을 감아 도는 금강의 물길이 발아래로 내려다보인다. 영월 청령포나 안동 하회마을, 예천의 회룡포 못지않은 절경이다. 뒤쪽으로는 적상산이 우람하게 솟아있고 그 아래로 무주읍내의 전경이 펼쳐진다. 전망대 자체가 이미 무주 땅이기에 그렇다. 전북에서 바라보는 충남의 물돌이다. 내친 김에 길을 더 늘려서 길게 걷고 싶다면 향로봉에서 다시 북쪽으로 등산로를 따라 활공장까지 이어지는 숲길을 따라가면 된다.

방우리 사람들. 이들은 금산에 살지만 무주가 생활터전이다. 1963년까지 전북에 속해 있었으니 옛 행정구역이 오히려 합리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엄연히 충남사람이다. 이들은 근래까지 금산으로 직접 갈 수 있도록 다리를 놔달라고 했다. 그러나 환경문제에 걸려 이마저도 물거품 위기에 놓였다. 이들의 요구는 금산주민이기에 금산으로 가고 싶다는 것이다. 금산주민이면서 무주로 다녀야하는 번거로움이 싫다는 것이다. 이들의 여망이 과연 헛된 것일까. 길손의 마음이 유배를 온 듯 무겁다.

방우리=나재필 기자 najepil@cctoday.co.kr

금산=나운규 기자 sendme@cctoday.co.kr


 

   
 

◆금산 방우리 가는 길=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를 타다 무주 나들목으로 나와 19번 국도를 타고 무주읍으로 들어 무주1교를 건너 내도방면으로 고갯길을 넘어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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