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시작된 검찰의 토착비리 수사가 점차 윤곽을 드러내면서 지역 공직사회와 정·관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수사대상에 오른 업체들의 횡령 및 비자금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데다, 수사 핵심인물들이 지방선거 등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번 사건이 정·관계 게이트로 번질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대농지구 철거업체 대표 구속… ‘검은돈’ 거래 장부 확보
청주지검은 지난 20일 회삿돈 수십억 원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업무상 횡령 등)로 청원군 H철거업체 대표 홍모(56) 씨를 구속했다.
홍 씨는 지난 2006년 수십억 원대 회삿돈을 빼돌려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 옛 대농지구 내 초고층 아파트 건설현장의 철거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시행사인 ㈜신영 임원 등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조사 결과 홍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H 씨를 통해 시행사 간부직원 등에게 로비를 벌인 뒤 실제 공사 철거권을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 홍 씨는 이 과정에서 H 씨에게도 로비 대가로 2억 원, 신영측 임원에 3억 원 등을 건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검찰은 이에 따라 H 씨의 신병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검찰수사가 시작되면서 잠적한 것으로 알려진 H 씨는 지난 2006년 지방선거와 지난 17대 총선에서 특정인의 선거캠프에서 핵심참모 역할을 한 인물로, 지방선거가 끝난 뒤 지자체 산하기관 임원으로 임명돼 근무하다가 최근 퇴임했다. 검찰은 H 씨가 홍 씨로부터 받은 수십억 원이 시행사 간부 임원을 비롯해 일부 지자체와 정치권으로 흘러 들어갔을 것으로 보고 이 부분을 규명하는데 모든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검찰은 앞서 홍 씨의 자택과 회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여 H 씨를 통해 로비를 벌인 대상과 금액이 구체적으로 적힌 장부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부에 적힌 인사 중에는 시행사 간부 직원은 물론 지자체 고위 공무원 등 정·관계 인사와 언론계 인사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H 씨로부터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돈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철거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비자금 조성으로 시작된 이번 사건이 정·관계 주요 인사들이 대거 얽혀 있는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이 큰 대목이다. 검찰은 이와 함께 그동안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홍 씨와 오랜 친분을 맺어온 특정 지방단체장과 공기업 대표와의 유착설에 대해서도 수사에 나설 예정이어서 수사결과에 따라 지역에 큰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구속된 홍 씨가 지난 6·2지방선거 당시 당선이 유력했던 청주권 특정 단체장 후보를 지원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골재채취업체도 수십억원대 횡령 … 수사 윤곽
지난 3월부터 K골재채취업체를 수사 중인 청주지검은 최근까지 진천군청 공무원들과 업체 관계자 등을 수차례 불러 불법채취여부 등을 집중 조사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A업체에 대해 수사를 계속해오고 있으며, 마무리를 짓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구체적인 진행상황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소환조사를 받은 일부 인사들의 전언을 종합해보면 검찰은 K업체 등 4곳에서 압수한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거래장부를 비롯한 회계서류 일체, 골재채취 반출일지 등에 대한 분석작업을 마쳤으며, 진천군청으로부터 이 업체 등과 관련된 서류를 제출받아 대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검찰은 K업체 법인계좌 등을 추적해 업체 대표 등이 수십억 원을 횡령한 것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은 이에 따라 자금흐름을 파악하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검찰은 특히 그동안 지역 정·관계는 물론 언론계, 특정 지역인사 등에 횡령자금이 흘러 들어갔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연초부터 시작된 검찰의 사정 바람이 특정업체의 횡령부분에 대한 수사를 넘어 지역 정·관계 게이트로 번질 조짐을 보이면서 수사결과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역의 한 인사는 “이번에 검찰 수사대상에 오른 업체들은 그동안 지역토착세력과의 유착설을 비롯해 선거개입설 등 각종 소문이 무성했다”면서 “수사결과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무서운 파장이 일 게 분명하다”고 전했다.
하성진 기자 seongjin98@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