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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와 힘겹게살고있는 이주여성 제니린 씨가 백혈병 진단을 받은 아들과 병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덕희 기자 | ||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엄마의 속도 모르고 네 살 배기 아들은 병원 침대 위에서 방긋방긋 웃기만 했다.
네 살 배기 아들은 지난달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두 살 배기 딸은 아들의 치료 때문에 돌볼 수가 없어 유치원 원장이 임시로 맡아주고 있다. 부모님도 없다. 남편도 없다. 그녀 곁에는 투병 중인 네 살 배기 아들과 두 살 배기 딸 뿐이다.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와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20대 이주여성의 이야기다. 필리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며 변호사를 꿈꾸던 제니린(25·여) 씨는 4년 전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왔다.
필리핀에 있는 가족과 이별하면서 오직 남편 하나만 믿고 오게 된 한국. 행복한 가정을 꿈꿨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자신보다 20살 이상 많은 남편은 한없이 따뜻했지만, 뭔가 이상했다. 건강이 안 좋아 보였다. 남편의 얼굴은 노랗게 변해갔고 황달 증상이 나타났다. 결국, 남편은 제니린 씨가 한국에 시집온 지 2년 만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 죽자 시댁 식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등을 돌렸다. 제니린 씨는 물론 손자 주항(4) 이와 손녀 주연(2) 이까지 모르는 사람 취급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입양을 권유하기까지 했다. 그러는 사이 연락이 끊겼고 세상에는 제니린 씨와 주항, 주연 이렇게 세 식구만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기초생활수급비 80만 원을 받아 근근이 생활했다. 하지만 남편이 떠난 세상은 너무나 냉혹했다. 아이들의 기저귀와 우윳값을 대는 데도 빠듯했다. 남편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었다. 아들 주항이의 백혈병 진단 소식이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주항이를 충북대병원에 입원시켰지만, 합병증 등 감염을 걱정해야 하는 상태로 볼 때 1인 병실을 써야 했고 당장 병원비부터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병원에서는 주항이의 치료 기간을 4년 정도로 얘기했다. 당장 병원비를 걱정하는 제니린 씨에게 4년에 걸친 병원비는 엄두가 나지 않는 액수다. 필리핀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한국으로 오게 해 도움을 받고 싶지만, 이마저도 여의치가 않았다. 60만 원에 달하는 왕복 항공료 때문이다.
제니린 씨가 지금 사는 청주시 용암동의 임대아파트는 병마와 싸우고 있는 아들과 어린 딸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못된다. 남편이 죽고 아이가 아픈 사이 집은 곰팡이로 뒤덮여버렸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임대아파트의 계약은 오는 8월이면 끝난다.
한국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제니린 씨와 주항, 주연이는 이제 8월이면 갈 곳 없는 신세가 된다. 내년이면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제니린 씨의 한국 이름은 김가은. 제니린 씨는 남편의 나라이자 이제 자신의 나라가 된 한국에서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우고 싶다고 했다.
제니린 씨는 “아이들을 두고 도망갈 생각까지 해봤지만,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라며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가장 미안한 마음이 앞서요”라고 말했다. 제니린 씨에게 도움을 주실 분은 (우체국 301481-02-056057 김주항☏010-5461-3797)으로 하면 된다. 고형석 기자 ko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