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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대웅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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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色不異空空不異色·색불이공공불이색),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色卽是空空卽是色·색즉시공공즉시색)인 것을 온갖 욕심에 가득 차 속세를 살아가는 낯빛이 부끄럽다.
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산사(山寺)를 거닐며 어리석은 중생에게 사자후를 토하는 고승과 마주한다.
기축년(己丑年) 새해 수덕사가 우리에게 ‘삶의 화두’를 던진다.
◆천년고찰 수덕사
“지명법사께서 산문을 열은 곳, 빈 덕숭산에 끝나지 않는 광장의 설법이어라. 종황자재함을 그 누가 알 것인가, 한길 신령스런 빛이 고금을 비추더라.”
올해 창건 1410주년을 맞은 충남 예산군 덕숭총림 수덕사(修德寺)는 내포 지역의 성산(聖山)으로 유명한 가야산 자락 덕숭산에 자리 잡고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수덕사는 백제 말 숭제법사(崇濟法師)가 창건하고 고려 공민왕 때 나옹(懶翁)이 중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本寺)로 충남도 내 40여 개 말사(末寺)를 관장하고 있다.
현재 각종 당우(堂宇)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수덕사는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우리나라 전통 불교 건축물을 한 자리에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국보 제49호인 대웅전(大雄殿)을 중심으로 좌우에 명부전(冥府殿)과 백련당(白蓮堂), 청련당(靑蓮堂) 등이 있으며, 천왕문과 금강문, 일주문으로 이뤄진 산문(山門)이 사찰을 찾는 손님들을 맞는다.
이 중 지난해 건립 700주년을 맞은 대웅전은 건축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여겨지고 있다.
앞면 3칸, 옆면 4칸에 겹처마와 맞배지붕을 지닌 주심포계 건물인 대웅전은 1308년 충렬왕 34년에 세워진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목조건물로서 그 예술미와 장인정신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특히 배흘림이 뚜렷한 기둥은 우미량의 율동미, 이중량(二重樑)의 곡선미와 함께 백제계 특유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대웅전 외에도 수덕사가 배출한 선승인 만공선사를 추모하기 위해 제자들이 세운 만공탑과 여래탑(삼층석탑)은 충남도 문화재로 지정돼 있으며, 대형 법회와 불교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그려진 노사나불괘불탱(盧舍那佛掛佛幀)은 보물 1263호다.
또 수덕산 산내에는 비구니승의 수련도량인 견성암을 비롯해 환희대와 정혜사, 극락암, 선수암 등 많은 도량과 암자가 산재해 있다.
◆‘고승’과 만나다
수덕사는 그 역사만큼이나 조선 후기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던 경허선사(鏡虛禪師)와 만공선사(滿空禪師), 일엽(一葉) 스님 등 많은 고승을 배출했다.
경허 선사는 승려들이 선을 사기(私記)의 형식으로 기술하거나 구두로만 일러오던 시대에 선을 생활화하고 실천한 선의 혁명가이자 불조(佛祖)의 경지를 현실에서 보여준 선의 대성자였다.
근대 선의 물결이 경허선사를 통해 다시 일어났다는 점에서 경허 선사는 한국의 마조(馬祖)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저서로는 ‘경허집(鏡虛集)’이 있다.
경허선사의 제자인 만공선사는 한국불교의 일본불교화를 시도했던 조선총독부의 종교정책에 정면으로 반대한 승려로 잘 알려져 있다.
만공선사는 종교가 정치로부터 분리돼야 한다는 점과 한국불교가 조선총독부에 의해 일본불교로 변질되면서 계율이 문란해지고 한국불교의 전통과 종교적 순수성이 흔들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수덕사에서 금선대(金仙臺)와 전월사(轉月舍)를 짓고 참선과 후학 양성에 매진하며 선불교를 크게 중흥시켜 근현대 한국불교계에 큰 법맥을 형성했다.
만공선사의 영정과 유물은 금선대 진영각(眞影閣)에 보관돼 있다.
‘청춘을 불사르고’를 지은 여류 문인이자 비구니 승려인 일엽 스님은 1928년 만공선사(滿空禪師)를 스승으로 득도 수계한 후 환희대와 견성암에 기거하며 불제자로 일생을 마쳤다.
일엽 스님은 1920년대부터 문학활동을 활발히 펼친 신여성으로, 오랫동안 폐쇄된 규범 속에 묻혀 있었던 여성들의 사회 진출과 문학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산=김동근 기자 dk1hero@cctoday.co.kr
▲ 찾아가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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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용=대전→ 공주→ 유구→ 예산에서 덕산·수덕사 방면으로 25㎞ 지점
◆대중교통=대전시외버스터미널→ 예산버스터미널에서 덕산·수덕사 방면 시내버스로 환승(50여 분 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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