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대부분은 쌍화점의 제목을 보고 고려시대 무역항 벽란도를 드나들던 회회아비가 떠올랐을 것이다. 만두가게 아낙의 손목을 은근히 부여잡던 음탕하고 노회한 아랍상인의 모습이 떠오르게 하는 '쌍화점'이라는 단어가 제목으로 사용된 이 영화에, 아쉽게도(?) 회회아비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잘생긴 꽃미남들은 많이 등장한다. 사실 조선시대에 비해 우리들에게 알려진 것이 별로 많지 않은 고려시대에 대한 호기심은 상상력을 발휘하기에 제법 어울리는 조건들을 가지고 있다.
독실한 불교국가, 세계 최강 원나라와의 전쟁과 굴복, 많은 외국 문화와의 교류 그리고 조선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방적이고 직설적이었던 성(性)에 대한 태도 등은 비록 많지는 않지만, 남아 있는 고려시대 문헌들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는 부분들이자, 내러티브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이다.
고려 말, 공민왕은 원나라 노국공주와 결혼했으나, 후사가 없어 원나라와 친원파 대신들에게 정치적 공세를 당한다.
결국 동성애자인 공민왕은 그의 호위총관이자 애인인 홍림과 노국공주의 성관계를 주선하여 후사를 도모한다. 그러나 홍림과 노국공주는 점차로 서로에게 이끌리게 되고, 이를 눈치 챈 공민왕과 노국공주 그리고 홍림의 삼각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만약 우리 역사의 드라마틱한 일생의 왕을 뽑는 불경한(?) 짓을 한다면 아마도 빠지지 않고 상위랭킹에 랭크될 인물들이 몇 있다. 연산군, 고종, 정조 등의 조선 임금들 그리고 고려의 공민왕 역시도 그러하다.
노국공주와의 깊은 사랑, 친원파 대신들의 몰살을 통한 왕권 강화, 그림과 음악에 능한 예재, 왕위를 노리는 조카 그리고 그의 호위무사에 의한 죽음 등.
유하 감독은 이러한 기록된 역사로부터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이후 꼭 멜로드라마를 찍고 싶었단다.
영화는 확실히 제법 탄탄한 이야기의 짜임새를 가지고 전개된다. 그리고 각 인물들의 감정의 흐름에 대한 시각적 표현에 대한 변화들도 밀도 있게 진행된다. 지나치게 멋지고 잘생긴 조인성과 송지효의 베드신은 확실히 인구에 회자될 만큼 야하기도 하고, 그들의 감정적 변화를 농밀하게도 보여준다.
확실히 영화에 대한 애정이 있거나, 일정한 내공이 있는 관객들은 이러한 세심한 부분의 공들인 흔적에 열광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블록버스터(어디까지나 한국영화의 기준에서) 영화 특유의 화려한 비주얼을 기대하는 관객들은 영화가 지나치게 밋밋하다는 평을 들을 수 있다.
일부 네티즌들이 장예모의 ‘황후화’와 비교한 글들은 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멜로 영화는 단순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야기 구조 안에는 계급, 젠더, 욕망이 함께 뒤섞여 있다. 그런 점에서 신분세습사회의 사랑이야기, 사극 사랑이야기는 더욱 극적인 멜로드라마가 가능하다. 이 지점에 동성과 이성간의 애증 대립과 육체에 대한 욕망이 뒤섞인 ‘쌍화점’에 기본적으로 눈을 붙잡는포인트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