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느림의 미학이다. 토끼의 순간 달리기 속도는 70㎞지만 거북이는 시간당 20m가는 것도 힘들다. 수명은 어떨까. 총총걸음 토끼는 10년 내외인 반면 느림보 거북이는 100년쯤 된다. 압축 성장시대, 앞만 보고 '빨리빨리' 달려왔던 우리이기에 거북이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운다.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가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이라고 한다. 머리로는 느낄 수 있지만 가슴으로 느끼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홍성 거북이마을 여행은 그런 점에서 적잖은 울림이었다.

홍성군 구항면 거북이마을은 보개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거북이 목처럼 생겼다고 해서 구목이라고도 하고 거북바위 머리가 안쪽으로 향해 내현이라 불린다.

마을은 전체가 하나의 풍경화다. 꽃 천지에 사방이 그림이다. 초입에서 만나는 집은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던 추억의 얼굴을 닮았다. 장독들이 가지런한데 그 옆은 '수줍은 노랑' 수선화 꽃밭이다. 장독대 주변에 꽃을 심은 것은 선인들의 지혜다. 예로부터 독 주변엔 채송화, 봉숭아, 분꽃, 맨드라미, 접시꽃 등 붉은 꽃을 심어 부정한 것이 범접 못하도록 했다.

마을로 들어가는 오른편은 냉이꽃밭이다. 손길이 가지 않아 마치 바람이 훑고 지나간 듯 성기다. 바구니 끼고 나물 캐던 처녀의 옛 풍경이 지나친다. 따지기만 되면 들판은 온통 나물캐던 처녀들로 북적였다. 봉숭아물 수줍게 감춘 손톱으로 냉이, 씀바귀, 달래, 쑥을 캐며 해토머리를 풍성하게 했을 터. 문득 전원주택을 짓고 텃밭 일구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들판을 지나면 봄 입성을 차려입은 마을이 나타난다. 건물 하나하나가 벽화다. 아무리 평범한 콘크리트 물성이라도 침묵하지 않는다. 투박한 표정이 없다. 공중화장실 벽에 꽃과 나비가 날아다니고 가축들이 한가로이 여물을 뜯고 있다. 낡은 창고는 물고기가 헤엄치는 워터파크다. 집집의 벽이 캔버스인 것이다. 벽화는 대전 정뱅이마을, 청주 수암골과 닮았다.

수령 500년 느티나무는 거대한 가지를 뻗어 그늘을 만들고 바람을 재운다. 햇살이 포근하게 내려앉으며 약천초당을 비춘다. 약천초당은 조선 숙종 때 권농가의 저자인 남구만 선생이 기거한 곳이다. 남구만은 영의정을 지낸데다 문장과 덕망을 두루 갖춰 의령 남씨 문중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선비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의 저자로 더 유명하다. 
 

   
 

약천초당 옆 연못에는 연잎 몇 장이 시심(詩心)처럼 떠 있다. 학문과 덕을 겸비한 깨끗한 행실, 가진 것은 없어도 여유와 즐거움을 잃지 않는 안빈낙도, 예의와 지조를 중시하던 약천의 꼿꼿함이 묻어난다. 일설엔 낚시의 문외한이었던 남구만이 이곳 연못에서 낚시를 배우며 세월을 드리웠다고 한다.

구산사(龜山祠)는 담양 전씨 '삼은'을 모신 사당이다. '삼은'은 고려 말 충신인 야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며 섬으로 떠난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인 뇌은, 성리학의 대가 경은을 가리킨다. 사당은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훼절됐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데, 후손들이 다시 건립해 마을의 상징소가 됐다. 우리네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인 차경(借景)이 그대로 녹아있다. 차경은 말 그대로 경치를 빌려온다는 뜻이다.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명당자리처럼 보인다. 
 

   
 

30여 가구가 사는 조그마한 마을에 위인들이 유난히 많은 것도 내력일까. 전라수군절도사로 있으면서 특수전함을 건조한 전운상 장군, 전라우수사를 지낸 전일상 장군, 온양 방 씨의 시조와 연산서씨의 중시조도 이 마을의 뿌리다.

요즘 거북이마을엔 솔바람길 조성이 한창이다. 마을에서 7개 바위(삼형제바위·산재바위·굴바위·줄바위·보살바위·말바위·범바위) 전설이 깃든 보개산까지 이어지는 총 5.8㎞ 구간의 산책로다.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된 거북이마을은 담양 전 씨의 깊은 맛이 담겨진 전통음식과 보리고추장으로도 유명한데 철따라 운영되는 체험프로그램도 인기다. 봄에는 봄나물 채취(화전놀이), 여름에는 소나무숲 산림욕, 가을에는 밤줍기와 종가 전통음식체험, 겨울에는 눈썰매타기, 연날리기 등이 운영되며 시조체험은 연중 운영한다.

거북이마을=나재필 기자 najepil@cctoday.co.kr

홍성=이권영 기자 gyl@cctoday.co.kr


◆홍성지역 가볼만한 곳

   
 


△제1경 용봉산=서해의 금강산이라고 불린다. 산세가 운무사이를 휘도는 용의 형상과 달빛을 감아 올리는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용봉산이라 부른다. △제2경 홍주성·여하정=서해의 관문이자 국방의 요새였던 홍주성은 현재 810m만 현존한다. 여하정은 홍주목사들이 정사를 구상하며 휴식을 취하던 곳. △제3경 만해 한용운 선생 생가=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이며 시인인 한용운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1992년에 주변지역을 사적화했다. △제4경 그림이 있는 정원=온실식물원, 연꽃정원, 야생정원, 자연생태관, 폭포전망대, 미술관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제5경 오서산=약 2㎞의 주능선이 온통 억새밭으로 이루어져 장관을 이룬다. 특히 가을이 절경이다. △제6경 남당항=천수만과 어우러진 제1종항으로 연중 미식가들로 넘쳐난다. 매년 9, 10월에 국내최대의 대하축제가 열린다. △제7경 백야 김좌진장군 생가=독립운동가 김좌진장군이 태어나고 성장한 곳이다. 본채와 문간채, 사랑채가 복원됐고 전시관, 사당 등이 건립했다. △제8경 궁리포구=천수만과 태안반도를 한눈에 볼 수 있어 드라이브코스로 유명하다. 속동전망대 바로 앞 '모섬'의 푸른 해송림이 압권이다. 갯벌체험지로 유명하고 주변에 조류탐사과학관과 승마체험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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