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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진 대표는 “고객이 가장 불안한 것은 이 빵이 언제 나왔느냐는 것 입니다. 많이 해놓으면 오래 놔두게 되고 적게 놔두면 고객들이 사가질 않아요. 대전시민들은 성심당의 신선도를 신뢰하고 있고 항상 방금 만든 빵만 판매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정재훈기자 jprime@cctoday.co.kr |
임영진(任榮鎭)대표에게 성공비결을 물으니 '항상 신선한 빵을 내놓기 때문'이라는 의외로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이것만이 다는 아닐 터다. 55년의 역사, 한해 매출 100억 원이나 되는 제과점엔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것 같았다. 임 대표는 돈을 벌기위해 빵을 만들지는 않는다고 했다. '세상을 밝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뜻밖의 말이 나왔다. 돈을 더 벌어 가족만 잘먹고 잘사는 게 아니라 직원들이 잘되고 주위가 잘되고 모든 사람들이 잘되는 세상을 꿈꾼다고 했다.
-가업을 잇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사실 제과·제빵과는 관련이 없는 충남대 섬유과를 졸업했습니다. 부모님께서 오래 빵을 만드시다 보니 어려서부터 쭉 보며 자란 게 영향이 컸죠. 장남이고 가업을 잇겠다는 생각에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빵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 때 제빵의 매력을 느껴 졸업하자마자 자연스럽게 이 일을 하게 된 거죠."
-단일 매장으로는 성심당이 전국에서 제일 크다고 들었다. 역사도 가장 오래된 걸로 알고 있다.
"군산에 있는 이성당이 성심당보다 규모는 작지만 역사는 더 오래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성당은 일본사람이 하던 것 물려받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예전엔 우리 같은 대형 빵집이 많았는데 다 사라졌습니다. 아마 성심당이 현존하는 빵집 중 가장 오래됐을 겁니다."
-성심당 골목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주변 상권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처음 터를 닦기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
"사실 처음에는 은행동이 아니라 대전역 앞에서 했었죠. 1961년인가부터 은행동 153번지로 옮겼으니까요. 당시 이곳은 사업하기에는 최악의 조건이었죠. 불모지 그 자체였습니다. 비포장도로에 주변에 무슨 목재 공장들만 즐비했었거든요. 아버지께서 신앙심이 깊으셔서 사업적 목적보다 성당 종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편안히 장사를 하자고 하셔서 이쪽으로 오게 됐어요."(성심당 바로 맞은편에 성당이 있다.)
-이후 성장하면서 일대의 명소가 된거군요.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 제과업계에서는 제정신 아니라고 할 정도로 위치가 좋지 않았습니다. 계속 성장을 거듭하니 주변에 상가가 생기더라고요. 이곳이 지금 은행동 153번지보다 성심당 길로 불릴 정도로 대전의 랜드마크가 됐잖아요. 원도심 상인분들이 성심당이 은행동을 지켜줬다며 고마워해주실 때 뿌듯하죠. 저도 감히 성심당이 원도심의 플러스 알파 역할을 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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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될 때는 하루 1만 명도 오십니다. 불황이니 뭐니 해도 지금도 평상시 주말에 5000여 분 이상의 고객이 찾아주십니다. 워낙 시민분들께 인정을 받아 감사할 따름이죠."
-굉장히 많은 숫자네요. 성공한 사람은 특별한 것이 있다는데. 성심당만의 성공비결은 뭔가요?
"제빵업계의 경쟁력은 빵의 신선도에 달렸습니다. 고객이 가장 불안한 것이 이 빵이 언제 나왔느냐는 문제니까요. 다만 빵이라는 게 해놓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많이 해놓으면 오래 놔두게 되고 적게 놔두면 고객들이 사가질 않으세요. 대전시민분들이 성심당의 신선도는 신뢰하십니다. 항상 방금 만든 빵만 판매한다는 믿음을 갖고 계시죠."
-그럼 수요를 맞춰 생산하시면 되지 않나요?
"(웃으며)업계에서는 귀신도 못 맞추는 게 빵 수요라는 말이 있어요. 잘 나간다고 많이 만들었다가는 반이 남기도 하고, 어떤 날은 많이 만들어도 부족할 때가 있어요. 매일 빵이 남기 마련입니다. 그 빵을 매일 기부하고 있는 거죠."
-그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일각에서는 기부하려고 빵을 많이 만든다고 하거든요.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워낙 매일 남으니 기부하는 거죠. 지금이야 빵을 기부하는 곳이 흔해져 이젠 의미도 없는 일입니다. 당연한 일이 됐어요. 성심당의 경우 빵 기부는 공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빵 기부 덕분에 신선도에 대해 인정을 받으면서 우리 가치가 올라갔으니 무형의 돈을 받은 셈이죠. 기부하면서 생색낸다고 욕도 먹긴 하는데 우리 빵을 기다리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이어가고 있죠."
- 외지에서도 많이 찾는 걸로 알고 있는데.
"대전 분들 뿐 아니라 외지인들도 많이 방문하십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대전 여행지를 검색할 때 성심당을 찾고 오시는 거죠. 요즘 여행의 트렌드는 즐기는 것이잖아요. 대전 여행 오시는 분들이 한번쯤은 꼭 들르시고는 놀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류도 많고, 크고, 저렴하니까요."
-그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면.
"모든 고객님이 다 감사하죠. 또 터미널, 역 등에 가서 우리 성심당 포장을 들고 계시는 걸 보면 기분이 좋죠. 기억나는 손님들, 사연 있는 손님들이 참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시집간 딸이 미국에 있는데 입덧이 심해 성심당 빵만 먹는다며 매일같이 오셨던 분도 있습니다. 대전에서 타지로 나가신 분들이 이 맛이 생각난다며 찾아오시기도 합니다. 운영자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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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 종류가 엄청나죠?
"지금 생산되는 종류만 약 400종류가 됩니다. 사이즈가 다르다거나, 재료가 다르다거나 약간씩은 모두 다르죠. 무엇보다 성심당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빵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어른들과 식습관이 다른 아이들을 위해 종류를 늘리는 거죠. 젊은이들 뿐 아니라 아이들, 어르신들 등 다양한 계층이 찾다보니 다양화에 노력하는 거죠. 게다가 가격은 서울의 반값 수준이니 금상첨화죠."
-그 많은 빵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빵이나 히트상품이 있으시죠?
"단연 튀김소보로를 꼽습니다. 1987년도에 개발한 건데 사실 아직도 미완성 빵입니다. 팥빵에 소보로빵을 입혀 튀긴 뒤 초콜릿을 발라 구워내는 건데요. 이게 성심당이 지역 최고로 만든 계기가 된 상품이 됐습니다. 처음 나왔을 때 매장에 이걸 사려고 줄을 서더라고요. 앞사람이 많이 사간다며 고객분들끼리 싸우기도 많이 해 번호표 주고 개수까지 써 넣게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여기저기서 많이 따라했지만 맛에서 차이가 나다보니 대부분 없어지고 성심당만 30년째 이어오고 있죠."
- 직원도 많고 그러자면 여러 어려움도 있을 텐데.
"모든 직원이 같은 마음일 수는 없죠. 그래도 슬기롭게 잘 하고 있는 편이라고 자부합니다. 지금 성심당은 정직원만 100명, 파트타임 100명 등 200여 명이나 됩니다. 사실 제과업계가 3D업종 중의 하나라서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일이 많아 기피하는 경향이 심해요. 그래도 우리 성심당은 선호하는 편이죠."
- 정체성이랄까, 오늘의 성심당을 있게 한 그 무엇이 있을 것 같다.
"성심당 무지개 프로젝트라고 해서 직원들과 지켜나가는 것이 있죠. 빨강은 경제 이익 추구, 주황은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일, 노랑은 법·규정·질서 지키기, 초록은 소비자의 건강증진 위해 좋은 재료 좋은 환경에서 나온 것만 사용하는 것, 파랑은 정리정돈을 깨끗하게 해 누가와도 편하게 하는 거부감 없는 인테리어 만들기, 남색은 벤치마킹 세미나 전문서적 공부 등 공부하는 것, 보라는 직원들과 모든 사실 공유하기 등으로 정해놨어요."
-굉장히 체계적이네요.
"이런 것들이 균형 잡힌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실시하는 겁니다. 직원들이 이걸 배워서 다른 곳에 전파함으로써 우리는 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밝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는 거죠. 직원들은 모두 자기 가게를 갖는 것이 꿈이니까요."
-혹시 체인점 계획은 없나요?
"전에 실패한 적이 있어서요. 체인점을 하면 금방 구워 파는 장점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언젠간 프랜차이즈가 아닌 직영점을 차려볼까 합니다. 직원들 100% 꿈이 자기 가게를 갖는 것이다 보니 위험부담 없이 그 꿈을 이루게 하는 방법은 지분을 주는 것이라고 보거든요."
-그렇군요. 성심당이 어떤 제과점으로 남길 바라나요?
"돈이 목적이라면 더 쉬운 장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또 빵장사가 무시 받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수준이 높아져 사회적 지위도 생겼죠. 목표는 최고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성심당이 최고의 빵집이 되는 거죠. 지금 성심당은 국내 뿐 아니라 대만, 중국 등 외국에서도 벤치마킹을 하기위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지난해는 400명이나 다녀갔지요. 그 역할을 더 많이 하기 위해 성심당을 더 완벽하게 만들어 빵집의 샘플로 만들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희망이 있다면?
"성심당 가서 배웠더니 이렇게 잘 됐다, 건전한 사업인데 돈도 번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굳이 돈만 볼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생활에 만족하며 건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성심당이 기틀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건전하고 밝은 세상이 오길 항상 바라고 있습니다."
<논설실장>
정리=이한성 기자 hansoung@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