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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박석원(당시 28세) 상사의 증명사진. |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믿겨지지 않네요. 잠잘 때나 밥 먹을 때도 여전히 아들 생각뿐입니다.”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22분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초계임무 중이던 ‘천안함’이 폭침해 46명의 젊은 영웅들이 국민 가슴 속에 영원이 잠든 지 어느덧 1년이 돼 간다. 1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유족과 국민들의 기억 속엔 그 날의 충격과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지난 16일 만난 고 박석원(당시 28세) 상사의 아버지 박병규(55) 씨 역시 잊어지지 않는 그 날의 기억을 되뇌며 지난 1년 간 아픔의 시간을 소회했다.
박 씨는 “(살아있었으면) 요즘 애들처럼 자동차나 유행하는 스마트폰도 사고 싶었을 텐데…. 못해주고 먼저 보낸 것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고 박 상사는 외동아들이다. 그렇기에 아버지 박 씨에겐 누구보다도 소중한 아들이었다.
특히 목회자의 길을 걷는 아버지를 따르기 위해 어느 누구보다 헌신했던 아들이었기에 먼저 떠나보낸 아버지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때문에 영원이 떠난 아들이 보고 싶어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혹시 전화가 오지 않을까” 착각에 빠졌다가 가슴이 무너지는 슬픔에 젖곤 한다.
아버지는 또 천안함에서 찾은 유품 얘길 꺼내며 아들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과 대견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박 씨는 “아들의 가방 안에 입대 전 엄마가 준 성경책과 기도수첩, 전도일지 등이 들어있었다”며 “읽어 보니 아버지와 어머니, 같이 생활하던 동료들을 위해 기도했던 석원이의 하루하루가 담겨 있어 한참을 울었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박 씨는 지난 1년 간 자꾸 떠오르는 아들 생각에 대외적인 활동 비롯해 그 어느 때보다 바쁜 한 해를 보냈다고 했다. 지난해 캄보디아를 비롯해 미국에도 다녀왔다. 하지만 항상 그의 여정을 함께 하는 것은 아들의 마지막 유품이 담겨있던 여행 가방이다.
그는 “아들의 유품이 발견됐던 가방에는 ‘천안함 PCC-772 박석원’이라고 적혀있다”며 “어디를 가든 아들과 함께 있다는 생각에 여정을 떠날 때 마다 항상 챙긴다”고 애틋한 부정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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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과 같은 천암함 유족들에 대한 걱정도 잊지 않았다.
박 씨는 “나는 20대 후반인 아들을 잃었지만 다른 부모들은 겨우 스무 살 갓 넘은 젊은 아들들을 잃었다”면서 “먼저 떠나보낸 부모들의 마음은 나보다 10배, 아니 1000배는 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하나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처럼 석원이의 희생이 우리나라와 국민을 위해 더 많은 가치될 것이라 믿는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생겨선 안되며, 국가의 발표를 불신하고 믿지 않는 풍토 역시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재근 기자 jack333@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