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케이블카 도착지점에서 야트막한 철계단을 오르면 대둔산의 명물로 자리잡은 구름다리를 만날수 있다. 깍아지는 바위산을 제대로 보려면 반드시 이곳을 지나쳐야 한다. 결코 이곳을 지나지 않고서 대둔산에 올랐다고 말하지 말라. 이형규 기자 knife4026@cctodat.co.kr |
◆봄마중 배티재
대둔산 중허리를 넘는 배티재(340m)에 서니 웅령·모악·내장산을 달려온 노령산맥의 준령이 힘차다. 금산과 완주의 키 높은 곳에 이치대첩비가 서 있다. 골짜기가 깊고 배나무가 많아 이치(梨峙)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곳이다. 배티재는 임진란 당시 권율 장군이 전주로 입성하는 2만여 명의 왜군을 1500여 명의 군사로 막아낸 곳이다. 행주대첩, 진주대첩에 앞서 육전에서의 승전고를 처음으로 울린 3대첩의 으뜸이다. 권율은 사위인 이항복에게 "내가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나 이치대첩이 최고이고 그 다음이 행주대첩이다"라고 소회했다. 마천대 정상가는 길 중 용문골은 들머리로 손색이 없다. 이곳의 봄은 '소리'로 먼저 다가온다. 용문골 계곡물 소리가 제주·전라의 해풍과 산풍을 거쳐 그제 당도한 봄을 알린다. 눈결에도 꽃이 피고 살갗에도 꽃밥이 내려앉는다. 이곳에서 마천대 정상까지는 2.2㎞. 바람소리 풍신한 조릿대(산죽)길을 따라 처음엔 완만하게 길을 연다. 겨우내 떨어졌던 낙엽들이 잔등을 보이고 꽃과 나무의 가지들은 한껏 물을 먹는다. 하얗고 가녀린 봄이 대둔의 골짜기를 지나며 몸을 낮추고 있는 것이다. 걸음의 속도는 느려도 풍경의 변화가 확연하다. 그러나 결코 심중(心中)을 내려놓거나 가벼움을 들키지 마라. 간단치 않은 산행임을 하산하는 이들의 얼굴 표정만 봐도 안다.
◆거벽(巨壁)의 등로
지난 98년 9월 히말라야 '악마의 성벽' 탈레이사가르에서 산악인 세 명이 숨졌다. 정상을 겨우 100m 남겨놓은 고도였다. 세상을 떠난 이는 '노동처럼 유익하고, 예술처럼 고상하고, 종교처럼 아름다운' 등반을 꿈꾸던 신상만, 최승철, 김형진이라는 청춘의 이름이다. 6800m의 직벽을 지나 갑자기 구름이 끼기 시작했고, 1시 간쯤 뒤 구름이 걷혔을 때 그들은 없었다. 세 명의 대원은 이튿날 1300m를 낙화처럼 떨어진 채 발견됐다.(모두 한 로프에 몸을 묶여 있었다) 이들은 질풍노도 같은 삶을 불살라 '등로주의'의 순수 알파니즘을 보여준 등산가다. 등로주의는 산에 품겨 안겨 호흡하며 '오르는 과정'을 중시하는 사조이고, 등정주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정상 등정에 성공하느냐를 중시하는 사조다. 생뚱맞게 웬 등로·등정주의를 말하는가. 바로 대둔산 칠성봉 가는 길에 충청 산악인 신상만의 묘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거벽의 암봉에서 꿈을 키웠고, 끝내 거벽의 암봉에서 사라졌다. 그의 손등만한 묘를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꿈이 가슴에 느껴져 벼리고 먹먹하다.
▲ 용문골에서 시작한 발걸음을 칠성봉전망대가 잠시 멈추게 한다. 깨달음 때문이다. 가까이 있어 발길이 닿지 않던 대둔산이 금강산의 절경을 닮았다는 것을 깨달은 까닭이다. 병풍처럼 둘러싼 기암괴석이 발길을 옮길 생각도 않게 만든다.
◆기암절벽의 진수
신선암을 지나 칠성봉 전망대에 올라서면 '산그리메'란 말이 떠오른다. 우리말로 그림자인데 산그리메는 주로 아침 햇빛 속에 산이 중첩돼 아스라이 펼쳐지는 모습을 말한다. 마치 수묵화처럼 능선의 오묘한 선과 농담, 안개와 구름 등이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풍경을 이른다. 멀리 보이는 덕유산과 운장산의 산그리메가 바로 이럴 때 쓰는 찬사다.
더불어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펼쳐져 절경을 이룬다. 왜 대둔산을 '호남의 금강(金剛)'이라 했는지 부연할 필요가 없다. 김삿갓의 금강산 예찬이 떠오르는 것도 같은 이치. 소나무와 소나무, 잣나무와 잣나무, 바위와 바위를 돌아가니/물에 물, 산에 산, 곳곳이 절경이로다.'
대둔산은 가벼이 보면 부드럽고 완만한 육산(肉山)의 얼굴이지만 오르다보면 영락없는 골산(骨山)이다. 골산은 계룡산처럼 바위가 많은 산이고, 육산은 흙과 나무가 많은 지리산과 태백산을 이른다. 때문에 대둔산은 출렁이되 평면적이다. 드넓은 공간에 기묘한 모양의 암봉들이 늘어서 어느 순간 원근감이 확장된다. 또한 모든 바위와 나무도 오직 수직을 지향한다. 이 대목에서 산객들은 각도계를 떠올리게 된다. 시야의 고도는 높아지는데 몸은 한없이 아찔한 허공을 밟는 듯한 느낌이어서 그렇다.
![]() |
||
▲ 대둔산 케이블카 |
◆소나무와 바위
대둔산은 하늘을 뚫을 듯한 거대한 바위들이 울퉁불퉁한 근육을 자랑한다. 중력의 무게를 못 이겨 바위가 된 기암괴석의 전설이 가득하다. 동심바위는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어린이 마음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이 바위를 찾았다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3일을 머물렀다는 설화를 전한다. 금강통문, 장군바위, 용문골, 장군봉, 칠성봉 등도 ‘설악산 용아장성’의 위용을 자랑한다. 바위를 뚫고 나온 소나무의 끈질긴 생명력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물론 '뚫리는 바위가 아플까, 뚫고 나오는 나무가 아플까'는 상념이다. 나무는 바위의 우산이 되고 그늘이 되고 하늘이 된다. 바위를 보기 위해 바위를 오르지만 바위에 오르고 나면 마음속에 있던 묵직한 바윗돌이 내려앉는 느낌이다. 바위는 무거워서 바위가 아니라 진중한 세월의 무게를 참고 있기에 바위임을 깨닫는다. 부동(不動)의 마음을 지닌 바위, 그 바위를 보노라면 인간의 심약함을 내려놓게 된다.
◆마천대와 구름다리
대둔산의 정상인 마천대는 원효 대사가 '하늘과 맞닿은 곳'이라는 뜻으로 이름 지었다. 높이는 900m가 안 되지만 체감 높이는 하늘에 닿아 있다. 비로소 반대편을 비롯해 시원한 조망이 드러난다. 북쪽으로 계룡산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지고, 동쪽으로 서대산이 풍경의 중심을 잡아준다. 케이블카 도착지점에서 철계단을 오르면 대둔산의 명물인 구름다리가 보인다. 길이 50m, 높이 80m의 아찔한 다리다. 철제로 튼튼하게 만들어졌지만 발아래 깎아지른 듯한 협곡을 보고 나면 선뜻 건너기가 쉽지 않다. 영화 '비밀애'에서 배우 유지태와 윤진서는 이곳 금강 구름다리에서 치명적 사랑을 암시하는 키스를 한다. 분명 육허기는 아닐진대 ‘사랑의 고도계’가 의심스럽다.
이밖에도 신라 고승 원효대사가 '절터가 정말 좋다'며 3일간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는 태고사가 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공부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대둔산에는 태고사, 안심사, 신고운사 등 천년사찰이 있었으나 한국전쟁 와중에 소실된 바 있다. 태고사 뒤편에는 절묘하게 솟은 의상봉, 관음봉, 문수대, 낙조대가 있어 일출과 일몰을 즐기기에 좋다. 동학농민군과 빨치산의 흔적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데 대둔산 마루 삼선계단에 가기 직전 '대둔산 동학군 최후 항전지' 표지가 있다.
◆산행 길라잡이
이번 산행팀이 간 코스는 용문골 매표소~신선암~칠성봉 전망대~칠성봉~마천대 정상~금강구름다리~장군봉~칠성봉~신선암~용문골이다. 대둔산에는 완주 방면에 3개, 논산 방면에 2개, 금산 방면에 1개의 등산로가 있다.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 있어 시설지구~마천대~용문굴~케이블카~시설지구, 시설지구~마천대~낙조대~용문굴~케이블카~시설지구, 시설지구~마천대~옥계천, 시설지구~마천대~깔딱재~수락계곡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산자락 경관이 뛰어나고 접근도 편한 완주 방면의 산행코스가 인기가 높다. 대둔산은 산 중턱까지 케이블카가 놓여있는데 평소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동절기 기준)까지 운행한다. 요금은 왕복 7000원, 올라가는 편도 4000원, 내려가는 편도 3000원이다.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정상까지 40분. 대둔산 도립공원 관리소(063)263~9949. 대둔산 케이블카(063)263~6621~3.
◆가는 길
대중교통으로 대둔산에 간다면 금산이 기점이다.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금산행 버스가 1일 8회 운행하며 금산에서 대둔산행 버스로 갈아타면 30분 정도 걸린다. 대전과 금산에서도 버스가 다닌다. 대전 동부·서부터미널, 금산터미널, 대둔산 버스터미널(063~262~1260)을 이용한다.
나재필 기자 najepil@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