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은 끊임없이 욕구를 잠재우고 본인 스스로 억제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국 단(斷)도박 대전 월평동 모임에서 만난 A(52) 씨는 단호하게 단도박의 의미를 이 같이 규정했다.
단도박 모임은 1957년 미국에서 Jim.W와 Ray M이라는 두 남자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됐다.
그들은 도박중독으로 인한 공통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만났고, 토론을 통해 내면의 심적 변화를 자연스럽게 일으킨 것이다. 한국 단도박 월평동 모임은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30분에 이뤄진다.
KRA(한국마사회) 장외발매소와 불과 수백 미터 떨어져 있는 월평동의 한 성당에서 진행된다.
협심자 20여 명과 가족 15여 명 등 총 30~40여 명 가량의 참가자들은 모임을 통해 사소한 일상부터 도박으로 인해 고통 받았던 기억까지 흉금없이 털어 놓는다.
1시간 30분 정도 진행되는 모임은 도박을 증오하고 성토하는 시간이 아닌, 자기 속에 있는 ‘무언가’를 분출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수시로 고개를 쳐드는 도박에 대한 욕망을 수도 없이 가다듬고 잠재우는 시간이다.
모임 시간이 임박하자 협심자들이 삼삼오오 집결했다. 우리사회 어느 곳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필부(匹夫)들이다.
각 방마다 놓인 탁자에는 단도박 모임의 진행과 강령 등을 적어놓은 책이 가득하다.
A 씨는 10년 정도 꾸준히 단도박 모임에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사연을 말해 달라는 질문에 답을 하는 대신 단도박 홈페이지 주소를 알려준다.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한 A 씨의 글에는 도박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피폐한 일상, 그로 인한 가정의 불화와 이혼위기 등이 그대로 녹아 있다.
또 홈페이지 수기에는 도박으로 인해 서너 번이나 자살을 기도한 협심자, 도박중독으로 직장과 가정에서 버림받은 협심자 등의 처절한 사연으로 점철돼 있다.
또 단도박 모임을 통해 변화하는 인생과 삶에 대한 자세가 꾹꾹 농축돼 있다.
A 씨는 “흔히 협심자들은 경마·경륜·경정을 3경이라고 이야기한다”면서 “국가는 3경을 이용해 합법적으로 세금을 착취할 뿐, 정작 사후처리비용에는 인색하다”고 성토했다.
이어 “도박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대개 바닥을 쳐야 깨닫는다”면서 “인생의 파국을 맞기 전에 단도박 모임을 찾아 도박을 잠재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말과 휴일에는 인근 조치원은 물론 전북 전주 등 외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사행산업체의 그늘에서 머지않은 곳. 오늘도 그곳에선 도박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이 모여 ‘끊어야 산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되뇌이고 있다.
국가가 도박의 폐해를 손 놓고 방치하고 있는 냉혹한 현실에서도 자존감과 의지를 불태우며 끊임없이 도박의 욕구를 잠재우고 있는 것. 도박으로 인한 절망을 희망으로, 도박으로 인한 피폐한 일상을 행복이 충만한 미래로 설계하기 위한 그들의 외침이 큰 울림으로 확산되고 있다.
서희철 기자 seeker@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