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조명 제한 단속 첫 날인 8일 자정, 백화점과 병원, 대형마트 등이 밀집된 대전시 서구 둔산동지역에서는 일제히 간판 조명이 소등되는 생소한 풍경이 연출됐다. 평소 이 지역은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까지도 꺼지지 않는 화려한 간판들로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의 눈을 유혹하던 곳이다.
많은 건물에 간판 불이 꺼지면서 어둠이 몰려들자 이전까지 왁자지껄 떠들며 분위기를 높이던 시민들도 하나 둘 귀가를 서둘렀다. 새벽 0시 10분이 되자 둔산동의 대부분 기관의 옥외조명이 완전히 소등됐고, 가로등과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전조등 불빛만이 대전의 밤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이날 둔산동 일대에 위치한 금융기관, 병원, 백화점 등은 대체로 정부정책에 적극 호응했지만 인근지역에 위치한 한 저축은행은 영업이 끝났음에도 옥외 간판을 비롯, 내부 조명까지 밝혀놔 아쉬움을 남겼다.
유흥업소 조명제한 시각인 새벽 2시가 되자 둔산동 일대에 즐비하게 위치한 술집들의 간판 조명이 하나 둘씩 꺼지기 시작했다.
이후 간판 조명을 끈 업소 업주들이 아예 가게 밖으로 나와 “영업하고 있으니 들어오라”고 소리치는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한 업주는 "우리는 새벽 2시 이후에도 손님을 계속 받아야 하는데 간판 불을 끄면 어떤 손님이 들어오겠냐"며 "요즘 장사도 안되서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든데 정부 정책까지 도와주질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같은 시각 유성에 위치한 유흥가 밀집지역 역시 계도기간이었던 전날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이나 모텔 등에만 드문드문 불이 켜졌을 뿐 전날까지만 해도 화려한 네온사인을 밝히던 대부분의 유흥주점이 간판 조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곳 역시 업주들이 직접 길거리로 나와 주변을 지나치는 시민들에게 영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거리가 어두워진 탓인지 새벽 2시 이후 유성 일대에는 술자리를 이어가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 택시기사는 “이 시간대면 원래 귀가하는 사람, 새로 오는 사람이 겹쳐야 되는데 이렇게 한적할 줄은 몰랐다”며 “지난 1999년 24시간 영업이 가능해진 뒤 유성에 이렇게 사람이 없는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가 고유가 대책으로 내놓은 '야간조명 제한 조치'는 단속을 피하기 위한 업소와 기관들의 소등에 힘입어 단속 첫 날 순조롭게 진행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대전시와 에너지관리공단 등 유관기관은 향후 단속을 본격적으로 실시한다는 방침이어서 지역 상점과 업주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대전시 신태동 경제정책과장은 "유흥업소 업주를 비롯해 많은 시민들이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국가 정책에 따라 단속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방침"이라며 "대상 사업장은 물론 각 가정에서도 불필요한 전등을 소등하고 저소비 전열기구 등을 사용해 에너지 절약 시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달라"고 말했다.
이한성 기자 hansoung@cctoday.co.kr
이호창 기자 hclee@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