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도의회는 집행부의 '순한 양'?
개원 이후 내홍을 거듭하고 있는 도의회가 도정 견제감시기능을 상실한 채 되레 집행부에 '놀아나고' 있는 형국이다.
이시종 지사의 측근 인사 기용 문제점을 지적하려던 김양희(한나라당) 도의원과 민선 4기 정실인사를 꼬집으려던 박문희(민주당) 의원이 도청 핵심 간부의 종용에 손을 들었다.
김양희 의원은 7일 오전 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내일(8일) 열릴 제298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이시종 지사의 측근 인사 기용’과 관련한 도정질문을 할 예정이었으나 핵심 간부가 지난 4일 전화를 걸어와 이 같은 도정질문 내용을 뺄 것을 우회적으로 종용했다"고 폭로했다.
김 의원은 "이 간부는 박문희 의원이 김 의원을 포함한 민선4기 개방형 직위 관련 도정질문을 할 것이라고 했다"며 "직접적으로 도정질문을 포기하란 말을 하진 않았지만, 듣는 입장에선 ‘협박’이나 ‘종용’으로 느낄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존재가치를 상실해가는 식물의회를 살리기 위해 임시인공호흡격인 도정질문을 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최소한의 저항 표현으로 도정질문을 포기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에게 도정질문 포기를 종용했다는 김종록 정무부지사는 "김 의원과 박문희 의원이 도정질문 사전요지서에 민선 4·5기의 정실인사 부분과 관련된 내용이 있어 협조를 구했지만 (김 의원이) 강경한 태도를 보여 더 언급하지 않았다"면서 "도정질문 답변을 지사보다는 실무를 잘 아는 국장이 하는 게 정확하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전달한 것일 뿐 질문을 포기하라는 의도는 절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이번 임시회에서 도정질문을 통해 민선4기 정실인사를 지적하려 했던 박문희 의원도 김 부지사로부터 회유를 받았다.
박 의원은 "지난해 12월부터 자료를 받아 민선4기 정우택 전 지사의 정실인사와 관련된 문제점을 파악했다"면서 "지난 4일 김 부지사로부터 '도정질문으로 하여금 민선4·5기가 대립하는 양상을 보일 것 같은데 재고해달라'는 부탁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김 의원과 대립각을 세우게 될 것 같아 고민했는데, (김 의원이) 도정질문을 안 한다고 하는데 나만 민선 4기를 언급하기는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이 질문을 뺄 생각이다"고 덧붙였다.
한 도의원은 민주당 일색인 도의회와 집행부에 대한 항의차원에서, 또 다른 의원은 배려차원에서 도민에게 부여받은 도정 견제·감시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자청한 도정질문을 포기한 것이다.
'도의회가 집행부에 놀아난다'는 원색적인 비난이 나올 법한 대목이다.
지역정가의 한 인사는 "김양희 의원은 도정질문을 빼라는 종용에 굴하지 말고 더욱더 강경한 태도로 집행부를 압박하고 도의회를 질타해야 한다"고 지적한 뒤, "박문희 의원 역시 김 의원의 발언여부을 놓고 일종의 눈치작전을 벌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소신없이 '갈지자' 행보를 보인 것은 집행부 견제감시의무를 져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회 내부조차 자조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도의원은 "의정활동이 도의원의 특권이라는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도민들의 눈과 귀가 돼 집행부를 견제하고 감시해야 하는 도의원들이 거꾸로 집행부 눈치나 보고 있으니 말문이 막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집행부가 의회사무처를 통해 의장단에 협조를 구하고 나서, 의회 내부적으로 도정질문을 조정하는 게 순리"라면서 "집행부의 월권행위, 의회사무처의 가교역할 부재력, 의장단의 미숙한 조정능력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되풀이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성진 기자 seongjin98@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