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2일 꽃샘추위의 매서운 바람을 피해 대전역으로 향하는 한 노숙인의 발걸음이 힘겨워 보이기만하다. 정재훈 기자 |
만물이 소생하는 3월의 시작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며 체감온도를 끌어 내렸다.
2일 오전 10시. 이날 대전지역 날씨는 '봄시샘 추위'가 엄습한 가운데 추위와 굶주림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갈 곳 없는 대전지역의 노숙인들이다.
이날 노숙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바람을 피해 대전역으로 하나, 둘 모여 연방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신문을 이불삼아 잠을 청하는 노숙인과 연신 눈동자를 굴리며 구걸의 손길을 뻗는 이들까지 다양했다.
이곳에서 만난 김 모(53) 씨는 "1000원만 있으면 밥을 먹을 수 있는데"라며 하소연했다.
1000원이 있어야 인근 복지관에서 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만의 독특한 언어로 옆에 있던 박 모(49) 씨에게 "꼬지(구걸하는 행동)좀 해봐"라며 손가락을 가르켰다. 손가락은 '귀족' 스타일의 한 젊은 남녀커플을 향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 씨는 이 커플에게 다가가 대화를 시도했지만 결과는 실패다.
이날 이들의 눈동자는 바빴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선 1000원을 구하는 것이 하루 미션이기 때문이다.
기자가 묻는 질문에 말문을 연 박 씨는 “몇 년 전만 해도 각종 단체나 무료급식소가 많아 끼니 걱정은 없었지만 요즘은 제재하는 곳이 많다”며 울상을 지었다.
이들은 주로 인근 복지관에서 1000원을 내고 밥을 먹지만 그마저도 이날은 1000원이 없어 힘들다.
이들이 지칭한 복지관 관계자는 "돈을 지불하는 것은 의무적인 것이 아니며 무료급식에 심적 부담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 최소비용만 받고 급식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박 씨는 이날 점심을 굶었다. 돈을 들고가지 않아도 되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미안한 마음에 갈 수가 없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가 찾아올 무렵 박 씨는 직장에서 해고당했고 이듬해 가족과 이별, 동시에 어머니까지 잃는 등 술독에 빠져 살다보니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한탄했다.
박 씨는 “딸아이를 생각하면 하루빨리 정신을 차려 근처 일터라도 나가 돈을 벌어야겠지만 이미 몸은 엉망이 됐고 술기운이 없으면 살아가기 힘들다”고 자책했다.
그는 오후가 되면 추위와 어둠을 피해 잠자리가 있는 근처 빈집으로 향한다.
그곳에 노숙인 6명과 함께 생활한다는게 박 씨의 설명이다.
노숙인들을 위한 시설이 대전 곳곳에 설치돼 있지만 이들은 시설 입소를 꺼려한다.
박 씨는 "올 겨울 너무 추워 시설에 들어갈까 고민했지만 좋지 않은 기억들만 떠오른다”고 푸념했다.
박 씨에 따르면 시설은 한 방에 4~6명씩 생활하는데 먼저 입소한 노숙인들의 텃세와 폭력 등으로 따돌림을 당했고 규칙적인 생활에 견디지 못해 퇴소했다.
노숙인상담보호센터 관계자는 "다양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법적 강제성이 없고 본인의 의지가 필요하다"며 "본인의 자립 의지가 없으면 이마저도 일시적인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주민 기자 sinsa@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