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수의사가 됐는데 정작 살아있는 것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 안타까울 뿐입니다.”

구제역 청정지역 ‘대전’의 명성을 사수하기 위해 애써왔던 대전보건환경연구원 소속 수의사들은 지난 15일 동구 하소동 구 모 씨의 축사에서 구제역 양성 판정을 받은 후, 그야말로 생지옥에서 몇날을 보내야 했다.

구제역 확산방지를 위한 돼지 2100마리의 안락사와 매몰처분을 선두에서 진행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대전보건환경연구원에 소속된 수의사는 총 14명. 이 가운데 구제역 의심신고 당시 즉각 하소동 축사에 투입된 인원은 3명. 이들은 최초 투입이후 3일 밤낮을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살겠다고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치는 돼지를 땅속에 묻는 악역(?)을 감당해야 했다. ‘나는 수의사로서 전문적 지식을 다해 동물의 건강을 돌보고 질병의 고통을 덜어준다’라는 수의사의 신조 제1조 조문(條文)을 수없이 되뇌이며 입문한 이들은 사실상 동물을 죽여야 하는 모순된 현실에 메는 가슴을 억누를 수조차 없었다.

안락사는 밀폐된 공간에서 이산화탄소 가스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산소를 차단해 질식사하게 만드는 극약처방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돼지들은 산소부족으로 숨을 헐떡이면서도 살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친다.

이어 수의사들은 단장의 슬픔을 억누르며 돼지의 목 뒤에 ‘석시콜린’을 담은 주사바늘을 꽂는다. 석시콜린은 근육이완제로 신경전달을 차단, 궁극적으로 심장박동을 중지시키는 약물이다.

때문에 수의사들의 뇌리에 깊게 각인된 안락사와 매몰에 관한 잔상은 쉬이 잊혀지지 않는다.

보건환경연구원 소속 수의사들은 선뜻 나서기 싫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지난 설 연휴까지 반납했고, 구제역 발생 현장에 투입된 이후 5~7일 간 외출도 못하는 가택연금(?)을 감내하는 등 마지막까지 구제역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현장에 투입된 권진석(33) 수의사는 “구제역 발생 이력이 전무한 대전의 전례로 인해 ‘매뉴얼’도 없는 상태에서 전쟁아닌 전쟁을 벌여야 했다”며 “살처분·매몰을 끝내고 집에서 5일 동안 갖혀지내다가 오늘(21일) 첫 출근했다”고 말했다.

유상식(49) 검사과장은 “수의사라는 직업이기 때문에 본분을 다할 뿐”이라면서도 “구제역이 종식될 때까지 빈틈없는 방역활동과 기동력 있는 출동태세를 확립하는 등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서희철 기자 seeker@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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