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의 입지와 관련하여 정치권을 비롯한 주요 광역자치단체들이 한 치의 양보 없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특정 지역이 과학벨트와 같은 대형 국책사업을 유치하면 해당 지역이 막대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누리고 지역발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지자체들 간에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현재의 과학벨트 유치 경쟁에서 우려되는 것은 과학벨트의 개념과 조성목적, 적정 입지여건, 성공요인 등에 관한 객관적·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사회적 합의 도출에 매진하기보다는 정치논리와 지역이기주의에 근거한 주장과 설전이 난무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벨트 조성은 기초과학을 진흥하고 원천기술을 개발하여 이를 상업화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세계 지식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과학벨트를 또 다른 연구 단지나 혁신도시 사업 또는 특정 지역의 지역개발 프로젝트로 간주해서는 곤란하다. 과학벨트는 국가 전체 과학기술계의 수요와 국내 산업 클러스터 구축 현황을 고려하여 과학벨트와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지역에 입지해야 한다. 더욱이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가속기의 설치·운영이 성공하려면 국내외 고급과학기술인력이 과학벨트에 거주해야 하며, 이러한 입지는 국내 최고의 주거, 문화, 예술, 교육 기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혁신성, 접근성, 개방감 등의 측면에서 국제화 수준도 높은 곳이어야 한다.
과학벨트와 유사한 시설과 단지에 관한 해외사례를 통해 발견되는 몇 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다.
과학벨트는 각국의 수도권 또는 가장 혁신적인 도시 근처에 입지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양성자 가속기는 뉴욕 시의 롱아일랜드에, 페르미연구소는 시카고에, 일본 고에너지 가속기연구소는 동경에서 60㎞ 떨어진 츠쿠바에, 유럽공동입자물리연구소(CERN)는 국제도시인 스위스의 제네바에 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과학기술단지인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리써치트라이앵글파크(RTP)도 주 수도인 랄리 인근에, 말레이시아의 사이버자야는 쿠알라룸푸르에서 불과 20㎞ 떨어진 곳에 입지해 있다. 기타 과학기술단지들도 대부분 수도권이나 인구 100만 이상의 대도시권역으로부터 70-80㎞ 이상을 벗어나지 않고 있어 향후 조성될 우리나라 과학벨트의 입지가 접근성과 국제화 차원에서 어떤 환경을 갖춘 곳이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과학벨트는 대부분 고립된 섬으로 존재하지 않고 광역적 공간범위 내에서 임계규모를 확보한 기존 산업 또는 혁신 클러스터와 밀접히 연계되어 있다. 따라서 향후 과학벨트 조성의 시너지 효과 극대화를 위해서는 과학벨트와 국내 산업클러스터가 유기적으로 연계된 네트워크형 공간구조 창출이 가능한 곳에 과학벨트를 조성해야 한다. 2004년 산업연구원은 국내 기술수준별 제조업 구분에 따른 첨단산업의 핵심집적지가 수도권과 충청권 북부(천안·아산)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지역의 생산기능이 연구개발 활동과의 물리적 집적 및 기능적 연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벨트는 이처럼 기존의 국내 과학기술 거점의 혜택을 필요로 하는 지역의 혁신환경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곳에 입지해야 한다.
과학벨트의 입지는 기초과학기술의 성과를 응용연구와 산업화에 잘 접목할 수 있고, 국내의 기존 산업생산 자원과 혁신 자원을 연계할 수 있으면서도 과학비즈니스 국제화에 성공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또한 과학벨트의 입지 결정은 전적으로 과학자들과 산업입지와 혁신클러스터 관련 전문가들에게 일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