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15일 대전 동구 하소동의 한 돼지농가에 구제역이 발생한 가운데 방역당국이 중장비와 인력을 동원해 매몰지를 만들고 있다. 허만진 기자 hmj1985@cctoday.co.kr |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15일 날벼락과 같은 구제역 양성 확진판정이 내려진 대전시 동구 하소동 돼지사육농가 농장주 구가회(67) 씨는 깊은 탄식을 쏟아내며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주체하지 못했다.
중국 지린성 투먼(圖們) 시에서도 축산업을 경영할 정도로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구 씨의 사육농가엔 땅이 꺼지는 깊은 한숨만 깊게 드리웠다. 평생 축산 외길을 걸어온 구 씨의 농장은 말그대로 하루아침에 절단났다. 지난 11일 새끼돼지가 폐사 이후 구제역은 단숨에 축사를 점령했다.
대전 전체 양돈두수의 63%에 해당하는 돼지 2100여 마리는 ‘확산우려’라는 명목으로 산채로 매장됐다. 대전전체 양돈업 기반의 절반 이상이 붕괴한 셈이다.
구 씨는 “반평생을 축산업에 종사했지만 구제역이 발생한 것은 처음”이라며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 말할 힘도 없다”고 한숨지었다.
구제역 발생농가 반경 3~10㎞에 위치한 또 다른 돼지사육농 이승장(68) 씨도 노심초사하긴 마찬가지. 과거 대량으로 돼지를 사육했던 촌로(村老)는 이제 자식과도 같은 70여 두의 돼지를 지키기 위해 한 뙤기 남짓한 축사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 씨는 “오랫동안 축산업에 몸담았지만 이번과 같은 청천벽력은 없었다”면서 “모임도 있지만 어디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고립무원으로 축사를 지키고 있다”고 감옥같은 실상을 토로했다.
지근거리에 있는 소 사육농가농 이백현 씨도 잔뜩 움츠린채 구제역이 비켜가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이미 소는 제2차 백신접종을 마치고 2주차에 접어들어 100% 항체가 형성되는 등 진정국면에 들어갔지만, 애지중지 키워온 소를 구제역에 빼앗길 수 없다며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 씨는 “지난주에 2차 접종을 완료했고 축사가 산 속에 있어 별 문제 없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청정지역 대전이 뚫린 만큼, 외부와 접촉을 끊는 등 하루하루 피말리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제역으로 인한 재앙은 비단 축산농만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살처분과 매몰에 따른 침출수 유출과 음용수 오염을 걱정하는 인근 주민들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몰지 인근 주민들은 “지하수를 먹고 있는 가구도 있기 때문에 충분한 조사 이후 매몰이 진행돼야 한다”면서 “인근에 대전천의 지류가 있는 만큼 침출수 문제에 대한 분명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주민들은 “해빙기와 장마철에 매몰지가 붕괴되거나 유실될 경우 자칫 핏물을 마셔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관계당국의 철저한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서희철 기자 seeker@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