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충청권 입지 공약 백지화를 시사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충청권은 물론 정치권에서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오면서 제2의 세종시 사태로 번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설 연휴 직전인 지난 1일 신년 방송좌담회에서 나온 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설 연휴 동안 충청권에선 ‘설 차례상에 과학벨트가 올라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민심이 요동쳤다.

대전·충남주민은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충청권 외면·무시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각에선 “대통령과 정부가 추진하던 세종시 수정안이 무산된 것에 대한 화풀이로 과학벨트 충청권 입지 공약을 뒤집은 것 아니냐”는 감정 섞인 말도 내놓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충청민심이 2009년과 지난해 겪었던 세종시 사태 당시 분위기로 급속히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강행과 충청권의 정면 반발, 수정안 국회 부결로 인한 원안 추진과정에서 발생했던 소모적인 논쟁과 국가적 갈등 초래, 국격 저하, 국민 신뢰 붕괴 등을 또다시 겪어야 한다는 생각에 충청권은 벌써부터 강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염홍철 대전시장은 지난 5일 트위터를 통해 “왜 충청권은 바람 잘 날이 없나”라며 “신행정수도 건설 하느냐 안 하느냐, 위헌이다 아니다, 그게 물 건너 가니 행정도시 만든다 안 만든다, 이게 건설로 귀결되니, 세종시가 원안이냐 수정안이냐, 그게 또 결정되니까, 이제는 과학벨트가 공약이다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치권도 이 대통령의 과학벨트 관련 발언으로 급속히 냉각됐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야당의 거센 반발은 물론,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불만과 우려를 표시하면서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이회창 대표 등 선진당 소속 의원들은 6일 청와대를 항의 방문해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규탄대회를 벌이고 과학벨트 충청권 입지를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야당의 대표 등이 청와대를 직접 찾아가 항의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향후 선진당의 치열한 정치투쟁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에 앞선 지난 1일과 2일 선진당 대전시당(위원장 권선택 의원)은 이 대통령의 발언을 비난하는 기자회견과 공약 이행 촉구 결의대회를 연이어 열었다.

민주당도 대통령의 ‘공약 뒤집기’를 맹비난하는 동시에 “세종시 문제로 상처받은 충청권에 대한 약속을 또다시 헌신짝처럼 내버렸다”며 충청민심을 자극하고 있다. 민주당 대전시당(위원장 박범계) 당직자와 당원 50여 명은 지난 대전역에서 설 명절을 맞은 귀성·귀경객을 대상으로 이 대통령의 과학벨트 공약 파기 선언을 규탄하고, 과학벨트 충청 입지의 당위성을 담은 유인물을 배포하는 등 가두 홍보전을 펼쳤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학벨트의 세종시 입지를 주장해 온 정두언 최고위원은 트위터로 “과학벨트는 대통령이 지난 1일 대선 때 중부권에 만들겠다고 약속했고, 교과부가 작년 1월 세종시가 최적지라고 발표했다”며 “대통령 약속대로, 정부 발표대로 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자꾸 문제가 커지는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대전시당은 조만간 과학벨트 충청권 입지 공약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의견을 모아 청와대에 전달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선우 기자 swlyk@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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